제9집: 하나되시려는 아버지 1960년 05월 2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35 Search Speeches

아버지의 영'으로 오시" 재림주님

하나님은 심정과 사정과 소망을 품고 인간을 대해 권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정을 백퍼센트 알았고, 사정을 백퍼센트 알았고, 소망을 퍼센트 알았지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정입니다. 왜 할 수 없었느냐? 그것을 말해 버리면 사탄이 먼저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자가 아직 미숙한 어린아이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아들에게 '무슨 보물이 여기 있고 무슨 보물은 저기 있다'고 하면서, 주인을 배반한 종이나 그가 원수가 있는 데서 상속해 준다면 그들이 아들이 가지도록 가만 두겠어요? 사탄이 그런 입장입니다. 하나님이 다 말해 주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하기 전에 사탄이 먼저 알고 다 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과 떨어져 있습니다. 이 땅은 누가 지배하고 있느냐. 사탄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이 땅까지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 위에는 원수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아들딸에게 명령한 일을 아들딸이 하기 전에 원수들이 알아 가지고 먼저 해 버린 후 그것을 가지고 요구하면 들어줘야 되는 것입니다. 공의의 법도를 가졌기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수가 했더라도 그것이 하라는 명령에 부합되면 인정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비사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비사로 되어 있어요. 억울하고 분합니다. 성경의 난문제를 붙들고 '아버지여,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고 기도하게 될 때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아버지여, 당신은 어찌하여 만민을 구원해야 할 아버지가 되셨습니까' 하고 호소하면, 하나님은 '네 사정보다 더 딱한 나의 사정이 있노라' 하십니다.

이런 것을 알게 될 때 여러분은 뻔뻔합니다. 믿기만 하면 천당 간다고요? 뻔뻔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되시려는 아버지를 모신 적이 있습니까? 아버지와 하나되기 위하여 싸운 적이 있습니까? 한번도 없습니다. 한번도 없다 해도 여러분은 반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우리와 하나되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던고?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뜻으로 하나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면 4천년 동안 준비한 너희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시기를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알같이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소망을 갖고 찾아오셨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시대에는 사정을 갖고 찾아오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나라가 없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 세계의 중심, 즉 제사장왕국이 된다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소망을 갖고 나가는 이들 앞에 하나님은 또 사정을 갖고 찾아오셨습니다. 사정은 누가 갖고 왔느냐? 예수가 갖고 오셨습니다. 여러분의 사정을 변호해 주러 오신 것입니다. 사정을 변호하는 일이 끝나면 무엇이 하느냐?심정을 규합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재림주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 표준은 사랑입니다. 맨 나중은 사랑입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들은 어떤 입장에 있느뇨? 심정과 사정과 소망, 이 모든 것을 아는 자리에 있느냐? 모르는 자리에 있습니다. 백판 천치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을 위해 이렇게 고생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는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정을 갖고 하나에서부터 세계까지 전역사를 이끌고 나오시어 맨 나중에는 아버지로서 전체를 사랑할 수 있는 때를 만들어 놓기 위해 애쓰시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종을 보내서 소망을 품게 하고, 신약시대는 아들을 보내서 사정을 통하게 하셨습니다. 앞으로 다시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의 심정을 갖고 오십니다.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셔서 심정의 기준을 세우게 될 때는 끝날입니다. 심정의 조건을 지상(地上)과 천상(天上)에까지 세운 다음에는 그것을 만우주 앞에 공포해야 됩니다. 너는 나의 영원불변의 아들딸이라는 식을 해야 됩니다. 이것이 어린양잔치입니다.

여러분, 끝날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기독교에서는 소망을 품고 인내하라고 했습니다. 참지 못하면 천상의 대도(大道)를 깨뜨릴까봐 참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나 스데반 혹은 12사도를 보세요. 찢기고 별의별 짓을 다 당했지만 참았습니다. 소망의 한날을 바라보며 참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의 선조였습니다. 소망을 갖고 참아라. 내일을 걸고 놓고 참아라. 사정을 알려면 충성을 다하라. 너를 위하여 주께서 이렇게 죽었으니 죽도록 충성하라. 이것이 기독교정신입니다. 충성이 무엇입니까? 충(忠)자는 중심의 마음입니다. 가운데 중(中)자에 마음 심(心)자이고, 성(誠)자는 말씀을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하늘 앞에는 변명이란 것이 없습니다. 죽으라면 죽어야 됩니다. 솜을 한짐 지고 불에 들어가라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