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집: 하나님의 슬픔과 인간의 무지 1975년 10월 14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77 Search Speeches

세상만사를 '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틀림-이 계"

자, 그러면 하나님이 있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사실 있다면 그렇게 생각할 것인데,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안할 수 없다구요. 하나님이 없다면, 인간을 마취시켜 아픈 것을 진통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상적인 종교라도 만들어 가지고, 공산당 앞에 먹히기 전에 이것을 몰아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리 생각하면 그래도 공산당보다 낫다구요.

그런 관점에서…. 그럼 하나님이 있느냐? 하나님은 이래야 되겠기에 하나님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발견하면 모든 것이 오케이다 이겁니다.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찾아보는 데 있어서 여러분들과 같이, 그저 잠자리 잡으려는 듯이 이렇게 하겠어요? (행동으로 표현하심) 어떻게 하겠어요? (웃음)

자, 레버런 문이라는 사람은, 여러분의 선생님이란 사람은 그러한 면에 심각한 때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얼마나 심각했겠어요, 얼마나? 그러한 때가 있었겠지요? 가만히 있는데, 생각도 않는데 하나님이 와 가지고 ,야! 레버런 문아 너에게 내가 복을 준다' 그랬다면 벌써 다 해버렸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선생님은 보통 사람의 머리보다 참 이런 차원 높은 머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는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참다운 신이 있다면 참다운 신을 통하여 종교를 중심삼고 인류를 수습할 길밖에 없다' 하는 결정적인 결론을 내리고는 하나님이, 신이 있느냐를 찾아봐야 된다구요.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찾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이 지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이 지으셔야 된다 이겁니다. 이론적으로 보더라도 그렇다는 거예요. 어떠한 중심이 있어야 된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모든 전부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람 소리를 듣는다' 하는 실감이 난다구요. 듣겠어요, 못 듣겠어요?「듣습니다」 듣는다 이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듣는 바람 소리는 어떠냐 이거예요. 그것이 문제라구요. 바람도 그 중심 바람, 어떤 중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거 그럴 것입니다. 바람이 불 때하고 불기 시작할 때하고, 안 불 때하고 그 경계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경계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조용한 것을 아니까, 조용할 때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떨 것이냐 이거예요. 전부 다 이 세상만사를 중심삼고 거기서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제일 따스하고 제일 바람 안 부는 날이 세계에 어떤 날이겠느냐를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바람이 불락말락하는 것도 다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바람의 출발서부터 태풍까지, 끝까지 다 안다는 것입니다. 날도 조용한 날에서부터 궂은 날까지 전부 다 안다는 것입니다.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새들이 있으면 새 노래도 듣고…. 지금 듣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몰라서 그렇지, 저 새 소리가 지금 좋아서 내는 소리인지, 기뻐서 노래하는 소리인지, 동무를 부르는 소리인지, 배고파서 우는 소리인지 혹은 친구를 찾는 소리인지, 뭐 자기 사랑의 상대를 찾는 소리인지, 어디 같이 가자고 하는 소리인지, 그것이 전부 다 다른데, 그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전부 다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너무나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은 좋게 느낄 수 있고 불쌍하면 불쌍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과 불쌍함을 아시는 하나님은 불쌍한 것을 볼 때 동정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또, 요 조그마한 개미 새끼…. 둘이 가면서 이렇게 하는 그 신호가 벌써 좋은 신호인지 나쁜 신호인지 다 안다구요. 여러분들 그거 들어보겠다고 이렇게 며칠이나 해봤어요? 거기에 그것을 듣는 주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듣는 주인이 있으니 그 주인과 가까운 나도 들어야 되겠다. 그거 아는 주인이 있으니 나도 알아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안 할 수 없다구요.

자, 비가 억수로 온다고 합시다. 그러면 도회지 사람들은 '아이구 이놈의 비, 에잇 쌍놈의 비가 왜 와' 이러지만, 농촌 사람들은 '아이고 복비가 온다. 복비가 와' 합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다르다구요. 하나님은 그런 것을 다 듣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신다 이거예요. 그걸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기에 듣고 싶고 알고 싶다 이거예요. 어디를 가든지, 바람이 부나, 아침에 해를 보나, 낮에 해를 보나, 저녁에 해를 보나 혹은 싸움을 하다가도 모든 것을 그러한 사고 방식을 갖고 그렇게 생각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된다 이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밖에는 하나님을 모르니까. 그래 그 말이 이해돼요?「예」

이것은 벨베디아의 우리 성지 돌인데, 이 돌도 하나님하고 통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거 이해돼요? 전체의 정신이 집중되는 날에는 돌하고도 말하고, 나무하고도 말하고, 바람하고도 말하고 전부 다 통하게 됩니다. 그거 이해를 잘 하면 다 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표정을 다 읽는다 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