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집: 인연의 행로 1972년 07월 1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21 Search Speeches

주체가 상대-게 주" 데-서 자비와 사'의 터전이 설정된다

그러면 자비라는 것은 무엇이냐? 완전한 선이 성립되어 가지고 그 누구의 것이 아니라 보다 큰 것을 위해 줄 수 있고, 보다 큰 것을 위해 상대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될 때에 자비의 마음이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체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게 될 때는 보다 높은 차원의 경지가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비로소 자비스러운 주체라고 말할 수 있고, 자비스러운 대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횡적으로 사랑한다고 해서 '아! 자비스러운 주체, 자비스러운 대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둘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 못된 그 환경을 초월한 자리에서 중심이 되고, 하나가 되지 못한 데에 본이 되는 공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주체가 되어 보다 공적인 기준을 따라오는 그들을 위하여 사랑의 마음이 흘러 내리게 될 때에, 자비의 마음이 설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도 여기에서 벌어 지는 것이요, 보다 차원 높은 행복의 요인도 여기에서 벌어지는 것은 두말할 것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보다 큰 것을 중심삼고 하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보다 큰 것을 중심삼고 하나되려고 하느냐?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자기를 초월한 자리에서, 보다 자비스러운 사랑의 주체, 보다 자비스러운 선한 주체, 보다 자비스러운 사랑의 중심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중심이 커 감으로 말미암아 본래의 절대적인 자비의 주인이요, 사랑의 주체요, 선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접근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큰 것과 하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보다 잘난 사람, 보다 유명한 사람, 보다 훌륭한 사람과 하나되려는 것은 그와 내가 하나되게 되면 그의 것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요, 하나의 공적인 것으로 남아지기 때문입니다. 이 공적인 것을 주체가 상대에게 다시 주는 경지에서 자비와 사랑의 터전이 설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이땅에 와서 하려고 한 것이 무엇이냐? 밥을 그리워한 것이 아닙니다. 혹은, 자기의 생활무대를 그리워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 뭐냐? 예수님은 이땅에 주체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중심삼고 나라면 나라, 세계면 세계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 일하신 것입니다. 그 하나된 것은 예수님의 것도 아니요, 세계의 것도 아닙니다. 그 하나된 것이 하나님 것으로서, 보다 차원 높은 중심적인 존재로서 차원이 낮은 사람들을 대하고 사랑하게 될 때에, 여기에 자비의 천국이 형성되고 새로운 선과 사랑의 세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수는 일구월심 생애를 통해 싸움의 행로를 개척해 나갔다는 사실을, 그 개척와 목적이 달성되지 않을 때는 생명까지 바치는 데에 순응해 가지고 죽음길도 기쁨으로 맞이해 나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사람과는 하나 못 됐지만, 사람과 하나돼 가지고 인간 세상에 새로운 주체로 서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인간을 대해 가지고 주체로 서지 못했지만 영적으로나마 하나님과 하나 된 자리에 섰기 때문에, 그 마음과 하늘이 하나되었기 때문에 그 하나된 기준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역사시대의 중심적인 생명이 인연되어 새로운 생명의 부활권, 하나님의 은사권과 자비권, 사랑의 세계, 선한 역사가 창조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 혼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혼자 태어난 존재는 없습니다. 반드시 두 존재가 하나되어 가지고 거기에서 '나'라는 사랑받을 수 있는 실체가 나온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가 사랑을 통해서 하나되는 혈연적인 터전을 통해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보다 높은 터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부모는 나를 사랑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 사랑하지 않더라도, 싸움을 하더라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나된 기준 위에서 보다 차원 높은 대상의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필연적인 소망의 기준으로 추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대상이요, 인간 본연의 행로인 것입니다. 그 행로를 따라가야 할 인생에 있어서 아무리 자기들 부처끼리는 싸우더라도 자식을 대해서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