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집: 언젠가는 가야 할 길 1969년 11월 1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9 Search Speeches

천주주의와 '붙-야 할 나

그런 자리에서 태어나서 자고, 먹고, 말하고, 보고, 듣고, 웃고, 느끼면서 장성한 후 시집 장가가서 아들딸 낳고, 그 아들딸을 교육시켜서 그들을 다시 시집 장가를 보내고, 그런 가운데서 살다가 그런 가운데서 죽어가야 합니다. 그 죽음은 다릅니다. 태어난 자리와 출발의 자리도, 죽음의 자리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태어난 자리와 죽음의 자리가 타락한 인간과 같으면 지옥 가지 천국 못 가는 것입니다.

본래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는 지옥과 상관없는 자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기에 지옥과 상관이 있는 조건을 가지고는 천국에 못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심정에서 출발했으니 하나님의 심정의 자리에 도달해야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탄의 참소조건을 남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에서 태어났으니 그 심정에서 살다가 죽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딸도, 하늘나라의 백성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껍데기를 전부 다 벗겨 버리고 마음의 보따리를 풀어 놓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천 가지 만 가지의 모든 것을 낱낱이 한번 보십시오. 전시해 놓고 보라는 거예요. 거룩한 것 같던 여러분의 마음이 해괴망측하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얼룩덜룩하다는 거예요. 얼룩덜룩한 것은 그래도 괜찮지요, 울긋불긋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보들을 가지고 살면서도 우리 아빠 엄마 형제를 사랑한다고…. 수작들은 잘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면 무엇을 기반으로 해서 살아야 되느냐?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은 가정을 기반으로 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태어나고, 거기에서 살고, 기뻐하는 것도 거기에서 기뻐하고, 울더라도 거기에서 울고, 죽더라도 거기에서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심정이라는 것은 근본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심정을 중심삼은 그런 집이 있다면 하나님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 집에 안 올 수 없는 것입니다. 온 인류가 전부 다 그 집에 들어와 깃들어야 됩니다. 천주라는 그 집은 온 우주를 전부 다 품는 집입니다. 그것이 천주주의입니다. 하나님과 그 아들딸과 온 세계가 다 들어갈 수 있는 그 집, 결국은 한 집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언제 그렇게 될래요? 언제쯤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가능성이 언제냐는 말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는 영원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여러분을 접붙여 줄 수 있는 주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자체로서는 영원히 불가능하기 때문에 접붙이는 주인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돌감람나무는 잘라 버리고 거기에 참감람나무의 순을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것을 접붙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현재의 여러분들의 모습을 몽땅 잘라 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되요, 안 그래야 되요? 「그래야 됩니다」 잘라 주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안 잘라 주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르지 않겠다 하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잘라 주려고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잘라 주어야 할 그 사람을 천리길을 쫓아가서라도 잘라 주어야 합니다. 쫓아갈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는 선생님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다 잊어버려도 여러분은 꽁무니에 와서 달라붙어야 됩니다. 밤에 쫓아내면 아침에 와서 달라붙어야 되고 아침에 쫓아내면 저녁에 와서 달라붙어야 됩니다. 선생님이 못살게 굴더라도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분을 못살게 굴어 봤어요? 지금까지 좋게 대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왜냐? 조금 더 길러야 접붙이기가 좋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커 가지고 접붙이기에 충분하다 싶을 때 잘라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를 잘라야 합니까? 밑창을 잘라야 돼요. 꼭대기를 잘라야 돼요. 꼭대기를 자른다면 목을 잘라야 되겠구만. (웃음) 그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목이 잘리면 대신 새로운 목을 접붙이면 되는 것입니다.

접을 붙여서 오관의 모든 감각이 동화되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본래 인간은 하나님이 기쁘시고자 하는 심정에서 그 기쁨의 대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심정을 터로 해서 태어나서 심정 속에서 자라다가 심정적인 가정을 이루면 그것이 횡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래 인간은 심정에서 살다가 심정에서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타락한 인간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노래한다는 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위대한 발견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