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집: 구세주는 오셨다 1965년 01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75 Search Speeches

예수의 울타리가 되어 줬어야 할 "셉 가정

하나님이 수천년 동안 수고하시어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시고 성별된 혈족을 세워 탄생시킨 메시아가 그 혈족을 버리고 섭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태어나서 이스라엘 나라를 바라보기 전에,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요셉,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마리아, 하나님을 사랑하는 요셉,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리아를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의 공인 밑에서 메시아로 나타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와 하나 되면 민족 전체가 바라보는 소원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전체의 뜻과 소원을 대신하는 중심적 터전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요셉의 손을 붙들고, 마리아의 손을 붙들고, '내 뜻과 소원이 이것이요' 하고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큰 비참함이었습니다.

이 땅 위에 메시아로 태어난 예수는 마리아의 복중을 통해 태어났으나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세상 사람과 같이 마리아의 육신을 통해서 태어났지만 예수의 이념과 사명을 볼 때,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가정을 기반으로 안식의 터전을 닦아서 그 가정을 피난처로 삼고, 위안처로 삼아 친척을 수습하고 종족을 수습하여 민족이 반대하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터전을 만들어 놓고 예수는 공생애 노정을 출발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30년 동안 준비의 노정을 거친 예수가 준비의 노정에서 무엇을 바라보았던가? 예수는 민족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자기 가정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요셉과 마리아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가식적인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고 역사적인 심정을 통하고 시대적인 심정을 통해 가지고 미래적인 심정까지 염려하면서 예수는 그의 부모를 사랑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내게는 어머니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나를 배어서 낳아 준 마리아는 어머니 중의 어머니다' 하던 메시아 예수, 그는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웠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웠습니다. 그렇지 않았겠어요?

요셉은 예수의 의붓아버지로 되어 있었지만 예수를 자기 아들딸 이상으로 사랑해야 했습니다. 예수의 동생들은 형님인 예수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엇이 되려고 하는 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막절이 가까왔을 때 그 형제들이 예수에게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했습니다. 그때 예수는 형제들에게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올라갔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예수의 속 마음을 알고 있는 동생들로 하여금 형님을 위하고 받들 수 있는 입장에 세우지 못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겠어요? 요셉과 마리아에게 있었습니다.

이 땅에 메시아로 와서 부모를 부모로 모시지 못한 예수의 한을 누가 알았으며, 형제를 형제로 대하지 못한 예수의 한을 누가 알았으며, 친척을 친척으로 거느리지 못한 예수의 한을 누가 알았습니까? 이것이 예수의 비참함이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것을 모르는 기독교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숭상하는 것도 지극히 비참한 것입니다. 만일 친척들이 울타리가 되어 예수를 감싸고 나갔던들, 세례 요한도 그 울타리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예수의 친척이거든요.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간 메시아를 축하하는데 무엇을 축하하는가? 그가 나신 것을 축하하는가? 그가 살으신것을 축하하는가? 그가 가신 것을 축하하는가? 무엇을 축하하는 것인가? 그분은 비참하게 태어 나셨습니다. 살기도 처량하게 사셨습니다. 그러다가 비참하게 죽어 가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축하하느냐는 말입니다. 비참하게 태어나서 처량하게 살다가 비참하게 죽어 간 것을 축하하는 것입니까?

예수는 나면서부터 살다가 죽을 때까지 그의 사람됨과 인격을 중심삼은 뜻, 즉 인생관, 우주관, 섭리관을 중심삼고 대할 수 있는 개인을 그리워 했을 것이요, 가정을 그리워했을 것이요, 종족과 민족을 그리워했을 것이요, 교단을 그리워했을 것이요, 나라를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선 메시아의 탄생을 우리는 기념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