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집: 심정의 사위기대를 이루자 1963년 01월 1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66 Search Speeches

내적인 심정의 고생길을 가야

그래서 오늘날 복귀도상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환경에 인연된 모든 것을 거쳐 나가는 데는 앞으로 남겨 줄 수 있는 기쁨이라든가 혹은 직접 줄 수 있는 기쁨을…. 여러분, 그런 놀음은 말이예요, 그런 놀음은 지방에 나가서 전도해야 벌어지는 거예요. 고생하고 이럼으로 말미암아 후대 사람들이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굶고 뭐 이렇게 고생한 것을 다 알게 됨으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몰랐단 말이예요.

`그 사람들이 온 날부터 우리들은 반대하고 뭐 하고 싶은 놀음을 다 하고 밥 먹고 따뜻한 방에서 잤는데, 그 사람들은 찬 방에서 먹지 못하고 굶으면서 다 이런 것을 했구나. 그들이 이 거룩한 뜻을 갖고 찾아 온 것은 누구의 사명으로 왔느냐? '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고, 자기의 오빠와 같이, 자기의 누나와 같이, 혹은 자기의 신랑과 같이,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모든 정적인 내용의 은사를 갖고 와서 고생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자기 부모의 모든 것을 몽땅 빼앗아 주고 싶어해야 한다는 거예요. 자기 아버지의 상투 끝부터 전부 다 잘라다가, 어머니 아버지, 자기 형제, 그 문중을 송두리째 전부 다 뽑아다가 주어도 부족감을 느낄 수 있게끔 심정 기준이 그렇게 되어야만 된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편하게 지내서 되겠느냐 말이예요. 그래, 할수없이 고생길을 가는 거예요. 고생 가운데서 주려고 하고, 고생 가운데서 받으려고 하니 주는 사람은 거기서 그 기쁨을 받게 되는 거예요. 또, 거기서 받는 것이, 그런 고생을 하 면서 주는 한푼의 돈이 억천 만금보다 귀하다는 거예요. 그럴 것 아니예요? 가치로 보면 무한한 가치라구요.

왜? 내적인 심정의 가치를 첨부해서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적은 거라도 무한한 가치와 통하기 때문이예요. 그 말이 무엇이냐 하면, 내적인 고충은 천주와 연결되는 비례의 가치라구요. 외적인 것이 아무리 많더라도 심정이 통하지 않으면 그건 적은 거예요. 그래서 몸적 고통은 잠깐이요, 마음적 고통은 영원과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신앙길에 있어서 양심을 속여 가지고 양심의 고통을 받고 신앙해 나가면 절대 못 빼는 거예요. 그것보다 더 큰 그때의 자기의 심정기준 이상의 은사의 자리가 안 되면 못 빼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회개할 곳, 은혜받을 곳이 어디 있나 하고 찾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런지 알아요? 주름살을 펴려는 거예요. 심정으로 회개하여 마음으로 주름살 잡힌 것을 펴려면 자기가 마음으로 주름살 잡혔던 것보다도 더 큰 은사의 자리에 가야 된다구요. 그러지 않으면 펼 수 없다구요. 그래서 은혜, 은혜 찾아다니는 거예요.

여러분들 지금 집에서, 여기 뭐 대개 다 아주머니들인데, 아들딸을 바라볼 때 `아, 내가 죽으면 저것들이 공동묘지 묻어 주겠지' 하는 그게 다예요? 갈 길이 얼마나 바쁘냐 말이예요. 복귀의 길이라는 것은 한 번밖에 없는 인연이예요, 한 번밖에 없는 인연.

보라구요. 여러분들, 지금은…. 이거 한 점 놓고 우주는 도는 거예요. 돌아가는 거예요. 엉클어지고 엉클어지고 돌아가는 거예요. (판서하시며 말씀하심) 마찬가지로 돼 있다는 거예요, 이게. 수많은 사람의 양심은 요 한 점을 놓고…. 이 한 점을 기원으로 하여 역사적인 모든 내용을 동반하고, 시대적인 현상과 관계를 맺고, 미래적인 소망의 터전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양심의 터전인데, 오늘날 이 터전을 잃어버려가지고 별의별 곡절이, 어디로 이렇게 지나갔지만서도 통하지 않아요. 양심 기준, 이 양심의 한 점이라는 것은 상하ㆍ전후ㆍ좌우가 통해야 돼요. 요것은 입체적이예요. 상하ㆍ전후ㆍ좌우, 요것이 통한 기준에서 딱 자리잡아야 풀려 나갈 것인데, 이렇게 가니 될 게 뭐냐 말이예요. 응?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