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집: 하늘편의 내적 슬픔 1970년 03월 29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263 Search Speeches

복귀의 길과 원리의 길

공산세계는 타락의 경로대로 민주세계를 적화하고 있습니다. 소련이 중공을 끌고 있고, 중공을 중심삼고 북한이 하나되어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하늘편의 아담 국가에 참부모의 내용을 가지고 거짓 흉내를 내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북한에서 김일성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중공은 무엇을 갖고 있느냐? 사람을 갖고 있습니다. 8억에 가까운 사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을 갖고 있는 부자가 아니라 사람을 갖고 있는 부자입니다. 또 소련을 무엇을 갖고 있느냐? 현대의 물질문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중공과 소련 중 어느 나라가 북한에 더 가까우냐? 중공이 더 가깝습니다. 남한을 침범한 것은 어느 나라냐? 아담 해와가 천사장에 의해 타락한 거와 마찬가지로 사탄권을 대표한 아담 해와의 입장에 있는 북한과 중공이 합작하여 소련의 후원을 받아 가지고 남한에 공세를 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편 삼위기대 국가의 형태입니다.

여기에 맞서려면 한국을 중심삼고 아시아에 반공전선을 만들어야 됩니다. 이런 사명을 우리가 감당해야 되기 때문에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교파적인 면, 국가적인 면, 세계적인 면에 있어서 아벨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신념을 중심삼고 국가를 앞세워 세계 앞에 신뢰를 받아야 하고 세계의 생활감정과 국가감정을 바로잡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라가 문제가 되기 때문에 나라에 대한 직접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애국애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기성교회를 사랑해야 됩니다. 기성교회 목사들보다 우리가 더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 시점에 갖고 나서느냐 못 나서느냐 하는 문제가 세계사적인 문제를 청산짓느냐 창산짓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를 좌우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입장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여러분을 이끌고 책임진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이 가정적인 탕감노정을 청산하기 전에 종족적인 시련 고통을 해방하는 책임을 져야 됩니다. 여러분보다 한 단계 한 시대를 앞서서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복귀의 노정은 가르쳐 주고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복귀되지 않고는 가르쳐 줄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에 타락한 장본인이 복귀되지 않고는 그것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원리의 길은 밟아가는 길이요,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적인 측면에 기반을 닦아 놓지 못하면 원리세계의 내용을 전부다 제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가려 나오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6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개인복귀섭리도 완결짓지 못하신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하나님께서 개인을 찾고 계시지만 그 감정은 나라와 세계를 찾기 위한 심정권내로 뒤넘이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찾아 세우기 위해 6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신 것입니다.

6천년 동안 한 아들을 찾아 세우기 위해 애타게 부르시는 아버지의 내적 슬픔, 하늘편의 내적 슬픔은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고충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희생해서 그런 아들이 될 수 있다면 천만번이라도 희생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감옥생활이 문제가 아니고, 노예생활이 문제가 아니고, 종살이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고생을 해야 해결될 수 있다면 우리는 만사를 제쳐 놓고 자처하고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하나님이 얼마나 슬펐겠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현시점에서 1970년대를 맞는 우리들은 재각성해야 되겠습니다. 마음을 굳게 다지고 `우리에게는 원수가 없다. 미운 것이 없다. 전부다 좋은 것뿐이다'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앞에는 원수가 없고 슬픔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슬픔 그 자체가 행복인 것입니다. 왜? 내 개인적인 슬픔이 극에 달하여 죽음의 교차로에 나서게 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면 가정적인 희망의 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단에 교단적인 슬픔이 극하더라도 거기서 죽지 않고 넘게 될 때는 민족적인 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이것을 알아둬야 됩니다.

우리가 부딪치는 슬픔은 무엇이냐? 행복입니다, 행복. 슬픔을 느끼면 느낄수록 행복의 순간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행복과 불행 가운데 하나는 꺾여 나가고 하나는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편을 위해서 가야 합니다. 하늘편의 슬픔을 극복시켜야 할 입장에 있으니 슬픔을 슬픔으로 남겨서는 안 됩니다. 소망과 희망과 행복의 열매로서 그 자리를 극복하고 소화시켜야 됩니다. 우리가 이런 내적 외적 준비를 다 갖추게 될 때 세계는 우리 앞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민족이 되어 국가를 형성하게 될 때 세계는 그 국가 앞에 완전히 굴복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