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집: 흥망의 분기점 1971년 03월 2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5 Search Speeches

남을 위해서 살면 망하" 법이 -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거느리고 3년 공생애노정에서 준비한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 자신이 위함을 받는 생활이 아니라 제자들을 위하는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열두 제자는 특별한 형(型)입니다. 인류역사 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인류를 대표하는 특별한 열두 형인 것입니다. 이들은 그 시대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시대를 넘어 종적 역사시대의 인류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표준형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열두 제자를 세워서 3년 동안 모심의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3년 동안 모심의 생활은 어떤 것이냐? 씨를 뿌려서 나오는 싹을 가꾸는 생활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생활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생활입니다.

그렇게 위하던 제자들이 꺾여 나가게 되면 예수님은 낙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열두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나가게 될 때, 예수님은 자기 스스로 결단을 내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자기를 주장하면서 하나님 앞에 십자가를 놓고 담판기도를 올렸던 것입니다.

그 전에는 어떻게 했느냐 하면, 세 제자를 위해 기도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던 내용은 무엇이었을 것이냐? 먼저 이스라엘 나라의 미래의 흥망문제에 대한 기도였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를 3년 동안 따르며 정성들여 나오던 그 제자들을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 제자를 위해 기도한 것은 여기에 대표되는 세 제자들이, 예수님과 같이 밤을 새우며 기도하는 세 제자들이 뜻을 중심삼고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지 말기를 기도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하여 기도했고, 나라의 대표자격인 세 제자를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틀어지게 될때, 십자가는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책임으로서 십자가의 담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위해 사는 사람, 즉 열 사람을 위해 살았으면 아홉 사람이 반대하더라도 한 사람은 자기편을 들어줍니다. 열 사람 중 반이 자기를 반대하더라도 반은 자기를 편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울타리가 되어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침략받는 일이 있으면 나를 보호해 줄 책임이 있는 것이요, 내가 대신 수고를 해주었으면 그것을 책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위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위하는 사람은 굴곡이 있다 하더라도 한꺼번에 푹 내려가지는 않는 것입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가운데는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올라가는 사람을 붙들고 내가 그를 위하고 동조하게 되면 흑암의 때를 방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생활에 있어서 '온유 겸손하고 남을 위하여 희생하라' 하는 말은 내가 침범받지 않고 굴곡을 벗어나서 언제나 발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지극한 사랑의 도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위해 살다가 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동네에 자기는 일전한푼없는 불쌍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동네 전체 사람들에게 은덕을 배푸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의 하루하루 생활이 비참하다는 것은 동네 사람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비참한 사람이 만약에 외부로부터 더 비참한 침해를 받게 될 때는 동네 사람들은 단결하여 그 비참을 막아 준다는 것입니다. 인정을 중심삼은 우리의 생활권에서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