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집: 기쁜 날을 맞는 자가 되자 1962년 03월 0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09 Search Speeches

하나님께서 슬"신 이유

옛날에는 시골에서 국민학교만 나왔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족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이제는 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굶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해야 합니다. 고통거리가 더 늘었습니다. 우리들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이 세상의 고통의 한계선은 내려갑니다. 우리가 그 고통으로 인해 굴러 한바퀴 도는 날에는 세상의 고통은 밀려나는 것입니다. 이제 천상천하에서 절망의 왕자는 하직을 해야 합니다.

이 삼천만 민족을 놓고 슬퍼하는 것보다 더 큰 한을 품고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께서 기특한 내 아들아, 내 딸아 하시겠습니까? 안 하시겠습니까? 그러한 무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의 슬픔은 없어질 것입니다. 인간도 하나님도 지금까지 슬픔의 환경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이것을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슬픔을 하루빨리 해소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슬픔과 한이 다 내 것이라 하며 서로 책임지려 할 때 하나님의 한과 국가의 한과 세계의 한과 나의 한이 풀립니다.

인간을 고생시키려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은 타락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련하신 탕감의 영역권에서 싸워야 합니다. 싸움은 인간이 해야 합니다. 우주적인 한을 품고서 싸우는 사람이 많이 나타나야 됩니다.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만일 그런 책임자가 있다면, 그런 길을 가는 집단이 나타나야 됩니다. 여기에 통일교회가 나타난 것입니다.

'나'는 역사적인 존재입니다. '나는 노아나 아브라함 때의 나다' 하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갈 수 있는 역사적인 사람이 많이 나타나야 됩니다.

민족적인 투쟁시기가 지나고 세계적인 투쟁시기가 지나서 해방이 되면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그때 이루어지는 세계가 이상세계입니다. 과거에는 내 가정, 내 마을 하였지만 수련을 받고 난후에는 이 세계를 끌어 안고, 나아가 이 천주의 소원을 붙들고 나아가야 됩니다. 끝날에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소집하십니다. 오늘날도 이런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우리에게는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해야 할 소망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 그 날을 맞이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우선 내가 있으면 전후 좌우 상하가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가 있습니다. 돌아서서 역사를 찾아가는 내가 되고, 조상을 찾아가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내가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은 왜 기쁨의 하나님이 못 되었느냐? 왔던 길을 되돌아간 하나님이기에 불쌍하신 하나님이요, 슬프신 하나님입니다. 미래의 길을 가지 못하시고, 오늘을 버리고 과거로 되돌아가야 하는 하나님이기에 기쁨의 하나님의 못 되는 것입니다. 돌아가는 데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가야 하기에 슬프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서서 가시지 않는다 할진대 인간은 소망의 한 날을 가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뒷걸음쳐 돌아가시는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이시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며, 에덴으로 돌아가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통곡하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시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슬픔의 골짜기입니다. 가시는 그 길을 보고 큰 소리라도 질러야 하는데 우리는 방향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거기서 '아이고 답답하구나. 막혔구나. 질식하겠구나' 하시는데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부를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는 지경입니다. 가다가 뼈다귀만 남는다 할지라도 인간은 하나님을 따라가야 하는데 방향도 알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이곳에 쓰러지면 하나님은 그냥 두고 돌아가셔야 하는 입장입니다. 물어 뜯겨 죽게 되어서야 하나님을 부르는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옛날부터 어둠의 권세가 잠식해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어찌하여 고아가 되었나! 팔목을 잘라도 항의할 자가 없습니다. 주권이 없는 불쌍한 백성들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주권이 없는 불쌍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주권을 찾으려면 내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불러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내려오실 수 없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을 오실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험산 준로도 넘어, 사탄이 나는 못 따라가겠다고 하는 곳까지 가야 합니다. 이 길이 고해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탄이 따라오지 못하는 곳에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안전지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구한 역사를 선인(善人), 선가(善家), 선민(善民)을 통하여 섭리하셨습니다. 과거의 도인들은 사탄이 못 가는 길을 갔습니다. 모두가 싫다는 길을 갔습니다. 마음이란 무엇이며, 사랑이란 무엇이며, 참이란 무엇이냐를 알기 위해 고난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야 할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