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집: 심정의 해원을 완성하려는 복귀역사 1960년 04월 1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49 Search Speeches

우리의 선조 아담 해와의 죄상

여러분 중에는 10년 혹은 20년, 더 나아가서는 일생 동안 하늘을 숭배하며 도의 길을 찾아나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어려운 길을 가는 원인은 어디에 있느뇨. 여러분 자신이 잘못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잘못한 것보다도 우리의 선조에게 잘못이 있고, 그 선조를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근본적으로 잘못한 장본인이 있나니 그들이 타락한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해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조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자라났고, 하나님의 지성 지대(至聖至大)하신 사랑의 심정 밑에서 키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라는 모습이 귀엽고 사는 환경이 자유스러웠다 할지라도 그들이 지니지 못한 것이 있었나니 그것이 무엇이었느뇨? 허락하여 주신 만물이 없었던 것도 아니요, 심부름꾼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심정의 인연을 맺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한이예요.

하나님이 무한한 창조의 이념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소망의 세계를 세우시고, 아담 해와로 말미암아 천하만상이 자유자재로 주관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고자 했던 것은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외적인 어떠한 조건이 귀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심혈이 그들에게 침투되어 있고, 당신의 뼈살이 잠재해 있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심정의 흐름이 아담 해와에게 향하고 있었던 연고로, 아담 해와에게 온 천지만물을 허락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저버렸습니다. 만물을 저버린 것도 아니요, 축복해 주신 것을 저버린 것도 아니요, 저버려서는 안 될 하나의 원칙을 저버렸나니 그것이 무엇이뇨. 하나님과 심정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기반입니다. 심정의 기반을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입니다.

심정의 모든 가치를 노래하기 위하여 지으셨던 아담 해와, 그 아담 해와를 지어 놓으시고 기쁨과 소망의 심정으로 자라는 그들을 보고 즐거워하시던 하나님, 따먹지 말라는 엄중한 계명을 세워 놓으시고 때를 바라보며 참아 나오시던 하나님의 소망의 심정이 얼마나 간절하였는가를 아담 해와는 몰랐습니다. 자신들을 대해 얼마나 고대하시고 얼마나 쓰다듬어 주고 싶어 하시는지를 이들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움직이는 그 모습을 귀여워해 주고, 쓰다듬어 주고, 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셨지만 하나님은 세우신 법도의 한 기준을 완성할 때까지는 기간을 두고 '따먹지 말라'는 조건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아담 해와가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알았던들, 타락의 인연을 맺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유린하고 천사장과 관계를 맺어 버림으로써, 하늘 세계 앞에 용서받지 못하고 추방당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타락한 조상, 타락한 부모인 아담 해와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바라볼 적마다 소망의 심정이 불타올랐고, 그들을 볼 적마다 그들이 자아완성하여 행복한 생활을 할 것을 생각하시며 행복의 감정이 불타올랐고,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만물을 그들 자신이 지은 것처럼 주관하고, 즐거워하며 쓰다듬어 줄 것을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소망의 심정은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다 끊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선조가 저끄러 놓은 죄상 중에 용납받지 못할 크나큰 죄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왜? 본래인간을 지으실 때 영원의 기준인 원리적인 법도에 의하여 지으신 연고로 그 기준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를 저버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였으나, 그들을 저버리게 되면 6일간 지으신 전피조세계의 원칙을 저버리는 동시에 영원의 기준까지 저버리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 되고, 영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실존까지 침해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기 때문에 이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를 다시 한번 구원하는 섭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영원한 원칙을 세워놓고 그 기대(基臺)위에 영원의 주체자로서 군림하여 생명체를 주관하고자 하셨던 그 심정의 발판을 인간조상이 타락했다고 해서 끊어버릴 수 없었기에, 그 기준을 바라보시면서 타락한 인간을 끌고 끌어서 본연의 심정기준까지 끌어 올리려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