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집: 인간은 참을 찾아 헤매는 탐험가 1959년 07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87 Search Speeches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님을 '심한 하늘의 섭리"

보십시오. 노아는 가정의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자신을 몸을 쳤습니다. 몸을 정복하기 위하여 치기를 120년 동안 했습니다. 비난과 조소, 별의별 억울한 환경에 처했던 것입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그럴 때마다 노아는 자신을 향해 `참자, 하늘이 약속하여 나를 이끌고 있는데, 하늘이 세워 주신 심적 기준을 대해 내가 변할소냐' 하며 자신의 몸을 쳐서 모든 어려움을 정복해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노아 가정이 세상적인 모든 조건을 쳐 버리고 민족을 흠모하여 나왔던들 하나님의 뜻은 그때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노아 가정이 가정적인 모든 곡절을 쳐 버리고 노아의 심적 기준을 붙들고 민족을 바라보고 나갔던들, 그 민족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 가정은 가정적인 뜻을 세우지 못하고 깨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뜻을 이루기 위한 섭리는 계속 진행되어 나왔습니다. 개인이 깨졌다고 개인을 붙들고 있을 수 없는 천륜의 때입니다. 가정이 깨졌다고 해서, 가정이 세워지지 않았다고 해서, 천륜이 움직여 나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은 깨져도 천륜은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개인이 깨져 나갔어도 가정의 때가 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정을 세우는 섭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인에다 가정까지 섭리하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그 가정이 깨어진다고 해서 섭리의 때는 지체할 수 없습니다. 이 섭리의 때는 사회를 복귀하기 위해 움직여 나아가고, 나아가 환경을 넓혀 민족적인 범위로 넓혀 나왔습니다.

노아 개인과 그 가정을 잃어버린 하나님은 4백년이 지난 후에 다시 아브라함을 세워 역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세워서 노아가 겪은 그 이상의 환경적인 조건을 갖춰야 했습니다. 그래서 할례를 통해 이방 사람까지 끌어넣는 섭리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까지도 잃어버린 하늘은, 4백년 후에 다시 모세를 세워 역사하셨습니다. 민족적인 시대가 다가오매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 몰아 넣고는 연단했습니다. 연단은 때리는 것입니다. 때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합치기 위한 작전입니다. 하나 만들기 위한 작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너희들이 살고 있는 땅은 원수의 땅이요, 너희들이 대하고 있는 바로 궁중은 원수의 궁중이요, 애급 사람은 철천지원수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살아야 할 곳은 전부가 `옳소이다'할 수 있는 한곳이어야 하기 때문에 하늘은 그 한곳에 들어갈 수 있는 한때를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가 민족적인 입장에서 섭리해야 할 때였기에 민족을 대표한 모세를 모험의 선봉자로 세웠던 것입니다. 이 모험의 선봉자 모세는 미지의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는 탐험가 중에 최고의 탐험가요 정탐가 중에 최고의 정탐가였습니다. 탐험가 중에 최고의 탐험의 용자로 타나났던 모세였습니다.

그렇게 나타난 모세가 바로 궁중의 방해를 박차고 이스라엘 민족을 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미지의 노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앞길에 어떠한 어려움이 가로막혀도 `막힐테면 막혀라. 하나님이 선조때부터 약속한 땅 가나안을 찾기 위해 품은 이 마음이 변할소냐' 하는 철석같은 심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바로의 땅에서 살고 있으되 가나안 땅에서의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심정이 갖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백절불굴 하나의 심정을 갖고 전진의 일로를 개척해 나간 모세였습니다.

그리하여 60만 대중을 거느리고 가나안을 향해 출발했으나 광야 40년 노정에서 그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와 같이 모험을 할 줄 알았던들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약속의 땅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생활에서 느껴지는 인식이나 감정보다 더 강했던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이고 배가 고프구나, 아이고 우리는 죽는구나' 하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역사적인 어떠한 위인이나 선각자들은 세상을 즐거움이나 세상의 만족을 얻으려 한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이념을 향하여, 약속된 한곳을 목적지로 하여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나서는 탐험가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앞을 향하여 달음질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 홍해가 웬 말이며, 광야에서 아말렉족속의 공격이 웬 말입니까? 40년을 유리고객하는 동안에 바로의 속박에서 풀려나온 장정들은 중도에 모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탐지하기 위해서 12지파를 대신한 12사람을 정탐하러 보냈더니 그들이 돌아와 보고할 때 10인은 `우리는 그들을 당치 못하겠습니다'하고 말했으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시대에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더 똑똑한 사람이예요. 미욱한 고집장이, 죽을지 살지 모르는 모험기질이 왕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를 지금까지 인도한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바로의 마술을 물리친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우리를 가로막고 넘실대던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해 준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광야에서 굶주리고 허덕일 때 메추리와 만나를 내려 먹이고 보호한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하며, 반기를 든 민족 앞에 당당히 나서서 맞선 것입니다. 그것이 복귀의 노정을 찾아 헤매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나아갈 길을 열어줄 수 있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역사노정이 전부 다 이런 노정입니다. 이리하여 민족시대를 거친 이스라엘에게는 국가시대가 왔습니다. 가나안땅에 들어왔지만 그때는 이미 국가적인 시대이기에 국가를 걸어놓고 싸워야 했던 것입니다. 국가를 걸어놓고 싸워야 할 그때에 하나님의 심정은 얼마나 착잡하셨겠는가. 국가의 형태도 갖추어야 되고, 가정의 형태도 갖추어야 하고, 개인의 형태도 갖추어야 했습니다. 국가의 형태도 갖추었으나 실질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하늘이 바라는 완전 승리의 발판이 되지 못했었습니다. 이런 곡절을 품고 역사해 나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허덕이셨습니다. 개인을 찾기 위해 허덕이셨으나 개인을 잃어 버렸고, 가정을 찾기 위해 허덕여 오셨으나 하나님은 가정도 잃어버렸습니다. 축복한 유대국가도 이스라엘 민족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를 계승하여 세계적인 패배자의 왕자인 양 오셨던 예수는 세계적인 복귀의 원한을 맡기 위한 대표자였습니다. 그런고로 그가 나타난 곳은 이스라엘 땅이었고 움직인 지역은 갈릴리 해변가와 예루살렘성 근처 몇몇 도성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의 언행은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고 역사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길을 허덕이다 가신 예수 이후 2천년 역사를 경과한 오늘날은 지상에서 승리적인 하나의 중심을 세워 이스라엘 국가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러한 뜻의 세계적인 기준에 맞추기 위하여 나온 것이 예수 이후 2천년 역사, 곧 성신의 2천년 역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끝날입니다, 끝날. 그 끝날은 하늘이 바라시는 개인을 완성시켜야 할 끝날이요, 가정을 완성시켜야 할 끝날이요, 민족을 완성시켜야 할 끝날이요, 국가를 완성시켜야 할 끝날이요, 세계를 완성시켜야 할 끝날이요, 나아가서는 천주를 완성시켜야 할 끝날입니다. 이러한 대사업을 끌어나오신 하늘의 심정을 오늘날 인류는 모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