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집: 신에 대한 체휼과 우리의 자각 1972년 06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88 Search Speeches

얼마나 하늘과 "불어 살려고 했느냐

만일 타락권내에 있는 인간들을 구하려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24시간이면 24시간을 언제나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안간들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땅 위의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도 사랑하는 자녀들을 가진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도 자식에 대해서는 24시간, 자기가 눈을 뜨고 의식이 있는 한 언제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생각하는 이상의 어려운 일이 있게 될 때는 모르지만, 그렇지 않는 한 언제나 자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도 부모의 심정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을 미루어서 보게 될 때에,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세계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오늘날 인류를 자기의 자녀로서 바라보고 있는 한 그 자녀들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 없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사실인 것입니다. 24시간 우리를 위해서 염려하고 계신 하늘이 있다. 그것이 말뿐이 아니고 사실이라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하늘과 먼 자리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낄 것입니다.

내가 가나 오나 어떠한 행로에 서 있더라도, 혹은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그 자리에는 나만 있지 않다. 하늘이 같이 있다. 내가 보고 느끼는 전부, 혹은 환경에 있는 모든 것을 인식하는 것은 나만이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는 시선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요구하는 그런 동감의 시선이 여기에 곁들여 있고 내가 내미는 손길에는 하늘의 동정의 손길이 깃들어 있다는 이러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우리는 망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보고 느끼고 감각하는 모든 것은 하늘과 주체 대상 관계에 있어서 일체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실지로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악한 자리에 나갈래야 나갈 순 없을 것입니다. 딴 일을 할래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늘은 우리 인간을 대해 가지고 그렇게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늘을 대하고 있는 우리 인간들이 하늘과 더불어 같이하려고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의 생활을 분석하면 분석할수록 불효밖에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없는 것입니다.

참되신 부모의 심정을 갖고 찾아오신 그 하나님이 아버지적 사랑을 가지신 주체되신 분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위해서 염려하고 그분이 염려할까봐 내 생활을 절제하고, 혹은 그분이 고통을 느낄까봐 내 환경을 정리하면서 수시로 하늘을 위주하고 내 환경적인 모든 것을 상대적 여건으로 일치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느냐?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혼자 있지만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러한 자리에 있어 가지고 하늘이 동정하고 하늘이 보게 될 때'내가 너를 지킨 보람을 느낀다' 할진대는, 하늘이 그러한 사람을 대해 가지고…. 그가 피해를 입든가 혹은 가해를 당할 수 있는 환경에 있게 된다면 그 자리는 하늘이 가해를 당하는 자리요 하늘의 슬픔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환경이 악한 환경이면 악한 환경일수록 악이 승리하게 하는 것보다도 선하신 하늘 앞에 굴복하도록, 그렇게 타개시켜 나가기 마련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생활적인 터전이나 어떠한 근거지를 여러분의 생활 이면에 혹은 생활 표면에서 확정짓지 않고서는 하늘을 체휼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