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집: 원리적 입장으로 본 현실적 임무 1975년 12월 29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296 Search Speeches

책임자의 마음 자세

그래 여러분들이 지방 책임자예요? 책임자예요, 아니예요?「책임자입니다」 책임자인 줄 알면서도 물어 보니 기분이 좋지 않지요? 책임자예요, 아니예요?「책임자입니다」 그래 무슨 책임자예요? 통일교회 책임자지요. 통일교회 책임자인데 어떤 책임자예요? 그게 문제예요. 어떠한 책임자냐? 정상적인 책임자냐, 비정상적인 책임자냐, 탈락적인 책임자냐 이거예요. 그런 등급이 벌어진다구요.

그러면 통일교회의 교구장이면 교구장, 교역장이면 교역장이라는 그 사람의 역량, 명망(名望)이라는 것은 한 도, 한 군을 대표해요. 그걸 알아야 돼요. 통일교회를 대표하는 게 아니예요. 통일교회는 나라를 위해 있는 거예요. 나와 교회와 군(郡)이 소생, 장성, 완성입니다. 이것은 일체화돼야 돼요. ‘내 집’ 하면 벽돌집 그 집이 내 집이 아니고, 그 슬레이트 집이 내 집이 아니라구요. 군(郡)이면 군 전체 집을 대신한 내 집이어야 됩니다. ‘내 교회’하면 그 군민을 교육시키기 위한 단체를 대표한 교회! 그런 입장에 선 ‘나!’그‘나’는 가정에서 가주(家主)가 될 수 있고, 교회에서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동시에 군에 있어서 최고의 사령관이 돼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통일교인들에게 맡긴 임무입니다. 알겠어요? 뭐라고 했어요? 뭐라구요? (탁자를 꽝 소리가 나게 치심) 「임무라 했습니다」 그래 임무입니다. 그러니 책임자는 바쁘게 일해야 되고 그 군은 안 가 본 데가 없어야 됩니다.

선생님은 팔도강산을 많이 돌아다녔지요. 미국에도 가자마자, 앞으로 내가 10년 후에는 반드시 이 땅을 밟고…. 구경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그저 40일을 중심삼아 가지고 48개 주를 ‘달려라. 달려라. 내 발길이 가야 되겠다. 산천초목아, 그리웠지? 나 여기 왔다’ 하고 전부 골짝 골짝에 가서, 될 수 있으면 높은 데 가서 기도를 하고…. 그런 놀음을 해야 된다구요. 어디 척 문을 열고 나가게 되면, 뜰이 나를 반겨 주는 것을 느끼면서 ‘오냐! 내 한번 나가 보지. 나 갈께. 산에도 갈께’그런 마음이 쑥 듭니다. 만물도 주인을 기다립니다. 그렇잖아요? 개가 있다면 그 개가 추운 겨울, 혹은 더운 여름에 지루한 밤을 지내면서 주인이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리겠느냐? 그렇게 자던 개도 주인이 쓱 문을 열고 나오면 어느새 와서 꼬리를 젓고 막 달려드는 것입니다. 아침에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구요. 얼마나 반가운 표정을 하는지…. 그런 거 알지요?

마찬가지라구요. 모든 산야를 거닐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저 골짜기를 내가 한번 가 봐야 할 텐데. 연기 나는 저 골짜기에 동네가 있다면 저 동네에 한번 가 봐야 될 텐데. 언제 한번 가야 할 텐데’ 그렇게 생각하고 가게 되면, 벌써 영계의 선조들이 하늘의 귀빈이 온다고 그 집청소를 시킵니다. 그런다는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꿈 가운데 다 보고, 뭣인지 모르게 ‘아! 사람이 없나? 누가 오는 것 같다’ 하는 거예요.

인심이라는 것은 천심과 통하는 거예요. 본연의 심정세계에는 교량이 필요 없는 거라구요. 전령자가 필요 없는 거라구요. 그 무엇인지 모르게 ‘야! 사람이 오는 거 같다’ 하는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러는 거예요. ‘누군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 찾아올 사람이 있다’ 이런 걸 느끼게 된다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마음 먹고 있으면 말입니다. 매일같이 자기도 모르게 먼 산을 바라보고, 저 아득한 오솔길, 골짜기 돌아 나오는 길을 바라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기다리게 된다는 거예요. 그거 그럴 것 같아, 안 그럴 것 같아? 부모가 자식을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는 자식이 있는 곳의 땅도 사랑합니다. 마찬가지라구요.

자, 주인의 책임은? 주체자의 책임은? ‘아이고 나 배고파. 밥 밥…’ 이런 생각이 들 때, 반드시 그 동네에 밥 굶는 사람이 없느냐? 밥 굶는 사람이 있거들랑 내가 점심 한 끼라도 안 먹고 몰래 그 집에 가서 그 집 애들에게라도 보태 줘야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라구요. 그런 마음을 가지면 그 사람은 밥 굶겠다고 해도 안 굶는다는 거예요. 밥 굶으려고 해도 자꾸 누가 먹여 준다는 거예요. 천지 이치가 그렇다는 거예요. 이 우주는 하나의 중심을 찾아 헤매는 거예요.

이 세계는 지금 뭘 하느냐? 하나의 중심을 찾아 나오는 거예요. 중심이 없으니 구르고 뒹굴고 부딪치고 깨지고, 또 굴렀다가는 눈덩이가 되고, 이래 가지고 그저 가다가 또 깨지고 또 구르고, 이래 가지고 흘러 나오는 역사 가운데 중심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역사적 중심이 없잖아요? 여러분 개인을 보면, 나 자신이 나 자신의 주인이 못 돼 있다구요. 주인이 없어요. 지금 이 땅에는 주인이 없다구요. 참 주인이 없다 이거예요. 참 중심이 없다는 거예요. 내가 내 주인이 아니예요. 너는 네 주인이 돼 있나? 내 집에 들어간다고 다 주인이 아니라구요. 싸울 수도 있고, 서로 훔칠 수도 있고, 약탈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요? 주인이 없습니다. 중심이 없다구요. 중심이 약탈할 수 있나? 중심축이 주게 돼 있지요. 그걸 알아야 돼요. 주는 것은 뭐냐 하면, 씨와 마찬가지예요.

여러분들을 보게 되면, 본부에서 선생님이 주면 ‘아이 좋다’ 하는 거예요. 어저께도 교구장들이 와 가지고 보고하기를, 옛날에는 뭐 집도 없고 그러니까 천하게 대하더니, 집이 생기니까 아주 뭐 동네에서 대우가 달라지더라는 거예요. 그거 그럴 수도 있지. 세상에서 대우가 달라지고 사람취급하는 것도 달라지고 말이예요. 옛날에는 잠바 짜박지 입고 다닐 수 있었는데 이제는 뭐 정장을 해야 되겠고 말이예요, 얼굴도…. 뭐 변소에 갔다가 손도 안 씻고 밖으로 뛰어 나오기도 하고 별의별 녀석이 다 있었을 거라구요.

그렇지만 ‘집이 그러니까 나도 그래’ 그거 왜 그래요? 그게 이치라는 거예요. 집을 주관할 주인이 됐기 때문입니다. 집을 주관할 주인이 되려면 모든 것을 전부 다 주관해 주고, 관리해 주고, 뿐만 아니라 사랑해 주고 집으로서 원하는 소원을 성취해 줄 수 있는 책임자를 그 집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이 그 요구에 응하고, 또 하늘의 그런 원칙이, 천성이 그 자리에 머물러서 내 마음에 부딪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움직인다는 거예요. 이게 다 이론적이라구요.

진성배가 저기 있구만. 교회가 ‘네가 교회의 책임자야? 진성배야, 너 책임 안 해? 이놈! 이놈의 자식아, 자격이 되느냐’ 이래, 아니면 ‘고맙습니다’ 이래? 어떤 거야? 주인 중에는 진짜 주인이 있고, 가짜 주인이 있고, 건달 주인이 있는 거예요. 그 집이 ‘이놈의 주인 이거 빨리 망해라. 망해 없어져야 딴 새로운 주인을 얻지’ 이러게 되면, 그 집에 도깨비가 드는 거예요. 요사스러운 병만 나고, 싸움만 하고, 그저 몇 사람 모인 것들이 그저 부산떨고, 요란만 피우고 하는 일이 벌어진다구요. 그건 누구 때문에? 주인 때문입니다. 주인이 잘못하면,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 책임 못 하면 그 동네가 편안치 않아요. 그 군이 편안치 않다구요. 무슨 말인지 이해 돼요?「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