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집: 육천년 동안 남겨진 빚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 1958년 04월 2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07 Search Speeches

예수님이 찾으실 사람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 :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아버지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이념은 물론이거니와 창조 이전의 이념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개인을 위하여 주고자 할 때 어떠한 한 개인이 막으면 그 개인을 끊어 버렸습니다. 가정을 위하여 잘 주고자 할 때 어떤 가정이 막으면 그 가정을 끊어 버렸고, 사회를 위하여 주고자 나설 때 사회가 막으면 그 사회도 끊어 버렸고, 나라를 위하여 주고자 할 때 나라가 막으면 그 나라를 끊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하늘 땅을 위하여 주고자 하는 시대가 올때에 이것을 막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끊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하늘의 전체의 뜻을 탕감하고 하늘의 이념세계를 소망하고 나섰다 할진대는 , 하늘이 우리들을 6천년 동안이나 길러나오시고 사랑을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러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늘은 바로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여야 되겠습니다.

세상의 원칙은 주고받는 이치입니다. 따라서 세계를 위해 주는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생애노정의 종말을 고할 그때 즉, 운명시에 여러분은 어떠한 말을 남기고 갈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이단의 괴수로 몰려서 십자가에 못박히어 죽으면서도 하신 말씀이. "다 이루었다 (요 19 :30)"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세계를 위하여 얼마만큼 염려하셨던가 하면 죽음을 각오하고 사탄과 싸워나가면서 세계인류를 염려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자신들도 이 땅 위에서 생명을 거두는 날 `아버지여, 다 이루었나이다´라고 기도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는 이 땅 위에서 어떠한 사람을 찾을 것인가. 자기의 사명을 인계받아 가지고 제 2차적으로 '아버지여! 예수여!' 라고 부르며 '다 이루었나이다'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을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을 헤쳐 놓고 오늘날의 이 민족을 위하여 염려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일의 이 민족을 위하여 염려하고 나설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고, 오늘의 이 세계를 위하여 염려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일의 이 세계를 위하여 염려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는 한 단계 앞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먼저 하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땅의 인간들이 모르는 하나의 세계적인 이념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그런 마음을 갖고 현실을 박차고 나설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이 나와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현실적인 하늘의 서러움을 탕감하고 역사적으로 모순된 모든 것을 밟고 올라설 수 있어야 역사적으로 얽힌 모든 것에 대한 탕감적인 조건을 세워 청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 보면, 끝날의 성도를 대해 하늘에 있는 예수가 부러워하고 천천만 성도와 하나님까지도 부러워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땅도, 역사 과정의 모든 인간들도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이런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이 때가 세계를 대하여 섭리하는 때인가, 개인을 대하여 섭리하는 때인가, 민족을 대하여 섭리하는 때인가를 분별해야 되겠습니다. 또한 내 개인을 위하여 살아야 할 때인가. 아니면 다른 어떠한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할 때인가를 분별하여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세계를 넘어서 앞으로 천주적인 천국이념을 대해서 살 수 있는 그런 때에 있어서 하나님을 부르면 하나님이 온 세계의 축복을 여러분에게 내려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여야 할 비약적인 이러한 고개를 남겨 놓았는 데도 불구하고 역사와 지금까지의 습관적인 환경에 지배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넘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누구일 것인가. 이제 우리들이 가는 걸음에 있어서는 십자가의 길도 좋습니다. 고난의 길도 좋습니다. 어떠한 길도 넘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길, 최후의 골고다의 길을 죽지 않고 넘어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붙잡으려 했지만 거부당하던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만일 그때 당시 예수를 붙들고 길을 안내할 수 있는 한사람, 또는 그의 제자가 이 땅 위에 있었던들, 오늘날 우리들이 잘 모르는 이 성경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지의 신앙세계에서 허덕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