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집: 본향의 집 1986년 05월 25일, 한국 본부교회 Page #282 Search Speeches

고향이 그리운 것은 사'이 깃"어 있기 때문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고향을, 본향의 집을 왜 그리워하느냐? 본향 하게 되면 반드시 집을 생각하는데 집을 왜 좋아하느냐? 그 집이 무슨 집이예요? 하꼬방집, 들어가서 보았을 때 그게 그 나라에 있어서 한 십등 이하의 집이라 하더라도 그 집은 그리운 거예요. 찌그러진 하꼬방 집에서 사랑하는 그대와 속삭이던 그것을 호화스러운 궁전의 보좌에서 사랑을 속삭인 것에 대조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상하지요? 왕궁에 사는 왕과 왕후들이 속삭이는 사랑의 깊은 정서보다도 찌그러져 들어가는 그런 초라한 집에서….

요즘으로 보면 뭔가요? 바퀴벌레가 있고 파리가 윙윙거리고 모기가 웽웽 거리는, 모기가 문 다리를 긁으면서 '아이고, 가려워' 하면서도 그 가운데서 밤을 지새워 속삭이던 그 시간이 그리운 거라는 거예요. 안 그렇겠어요? 그래요? 그 행복이 어디 있느냐? 크고 높은 집에서, 호화스러운 집에서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니예요. 그러면 뭐냐 하면, 사랑이 깃들어 있는 데에 행복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 고향이 왜 그리우냐? 그건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무슨 사랑이 있느냐?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이 있어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있어요. 누님, 형님, 혹은 동생의 사랑이 있다는 거예요. 또, 근처에 있는 자기네 사촌, 오촌, 팔촌, 이것이 다 거추장스러운 것 같지만, 아저씨 아줌마 그 동네 모든 이웃 근처 사람들이…. 근처의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봐요. 세상에 어머니 아버지 한 가정만 딱 있고 그 동네에 친척이 없다고 생각해 봐요. 얼마나 큰일나겠어요.

이건 우리 집을 가만 보니까 아버지도 남자 같지 않고 여자같이 생기고, 할아버지도 여자같이 생기고, 동생마저도 다 여자같이 생겨서 나만이라도 남자같이 활동하고 싶은데, 아버지를 바라봐도 형편이 없고 할아버지를 바라봐도 마찬가지고 동생도 그러면 그거 얼마나 삭막하겠어요? 혼자 무슨 재미예요? 그러나 우리 집에는 전부 다 여자 같은 남자만 있지만, 삼촌 사촌 가운데는 남자 같은 남자가 있기 때문에 '산에 올라가서 멧돼지를 잡자, 가자!' 하는 그런 놀음이 가능하다구요.

그걸 잡아 가지고 뭘할 것이냐? '어머니 아버지를 실컷 먹이자. 얼마나 좋아할까? 여편네, 아들딸을 실컷 먹이자. 얼마나 좋아할까?' 이렇게 가는 데에 인간생활의 묘미가 있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거 무엇을 중심삼고? 좋아하게 하는 환경에 있어서 어느누구든지 잊을 수 없는, 그 생애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정서적 인연의 폭과 넓이를 고향만큼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고향이 그리운 거예요. 그렇게 보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은 태어나면서…. 복중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는데 여러분은 불평을 한다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의 관심 가운데서 어머니 복중에서 자라면서 사랑의 마음이 자기에게 초점이 맞춰져 가지고 자랐다는 걸 생각해 봤어요? 지금까지 사는 데는 사랑의 인연이 엉클어진, 역사적인 그 사랑에 불평불만을 하고 울타리를 배신한 자의 입장에서 살아온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왜 태어났어!' 하고 불평하는 거예요. '인간이 왜 태어났어!' 하는 거예요. 인간이 왜 태어나요? 밥 먹기 위해 태어났지요. 얼마나 단순해요? 기분 좋지요? 밥 먹기 위해서…. 그래요?

인간이 왜 태어났느냐? '아이고 돈벌기 위해서…' 하지요? 돈벌어서 뭘해요? 밥 먹기 위한 거 아니예요? 그래, 왜 태어났어요? '아이고, 내가 공부하기 위해서…' 그래요? 공부 좋다는 녀석 어디 있어요? 공부 좋다는 녀석은 때려죽이려 해도 없다구요. (웃음) 가난한 사람 공부 못 해 가지고 공부하고 싶다고 울고불고하지만 그건 할 수 없이 그러지요. 같은 입장이 안 되어 있으니 공부해야 따라잡겠다고 생각해서 그러지, 공부해서 따라잡을 필요가 없다 하게 되면 공부하겠다는 사람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공부해서 뭘해요? 그거 알면 뭘하노? 머리만 커 가지고 혓바닥만 나불거리고 입술만 나불거리지. 그건 쓸모가 아무데도 없다구요. 어디 가서든 조잘거리고 말이예요. 말을 못 하고 재간이 없고 무뚝뚝하고 두루뭉수리하더라도 참된 사랑을 가졌으면 그만이지요. 한국 노래 가운데 그런 노래도 있잖아요? 뭐 어때야만 남자였던가, 낫 놓고 무엇을 못 그려도 뭐 어떠면 그만이라고 말이예요.

그러면 고향을 어떤 사람이 사랑하느냐 이거예요. '아이고, 미인들만 사랑할래. 잘난 사람만 사랑할래' 그래요? 이건 뭐 뚝배기 같은 사람이나 말이예요, 뭣인가, 제일 나쁜 말이 무슨 말인가요, 제멋대로 생긴 사람이라도 고향을 다 생각하는 거예요. 왜? 거기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거예요.

그래, 고향에서 울던, 고향에서 내가 듣던 꾀꼬리 소리는 아무리 천리원정 먼 길을, 타향살이를 떠나도 거기에 비교할 수 없어요. 아무리 참새가 짹짹거리는 것이 같은 소리라도 이국 땅에서 듣는 참새 소리는 내 정서를 유발시키는 데 아무 내용을 갖지 못하더라 이거예요. 그렇지만 고향에서 짹짹거리는 참새 소리는 내가 어디 가서도 잊을 수 없는 참새 소리로서 내 정서적인 면을 언제나 연결시키고 있다는 거예요.

고향에 있는 산천이 그립고, 고향에 있는 뜰이 그립고, 고향에 있는 바위가 그립고…. 바위가 있더라도 그 바위 자체는 금강산 좋은 경치를 대표한 자리의 위세당당한 바위에 비교할 수 없는 정서를 갖고 있다는 거예요. 편편한 돌, 보기 싫은 바위라도 고향의 것에 비교할 수 없는 거예요. 그건 왜 그러냐? 거기에는 정서적 인연이 갖추어져 있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