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집: 우리의 목적 1972년 10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 Search Speeches

선의 목적 달성은 희생과 사'으로

그 선의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냐? 희생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희생의 본질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했다고 해서 그 희생을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희생하면 희생할수록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그런 상이한 소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얼마만큼 크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는, 그것을 드러내는 자리는 반드시 희생하는 그 양이 얼마나 크냐 하는 것에 따라서 높고 낮은 사랑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희생이 크면 클수록, 큰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요. 희생이 적으면 적을수록 거기에는 높지 못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가난한 집의 부모들은 그들의 아들딸들을 남과 같이 먹이지 못하고 입히지 못하고 남과 같이 하고 싶은 일을 자식 대해서 못 해주면 못 해줄수록, 그 마음은 자식들 대해서 잘해 주는 부잣집 부모보다도 더 고통이 심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대하는 순간순간에 거쳐가는 애달픈 심정은 부잣집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부모의 시선에는 눈물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감정이 뛰쳐나오는 것입니다. 도리어 눈물이 앞서고 감정이 앞서고 긍휼이 앞서는 자리가 아니냐, 그 자리에 선 사람은 자기는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긍휼이 앞서고 눈물이 앞선 입장에서 '네가 나를 위해서 희생하라'는 말은 절대 못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더 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런 자리가 자기에게 낙심을 촉구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리일수록 '오냐! 조금만 참아라! 남과 같이 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안 오면, 내가 힘이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빌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집 자식이라고 전부 다 불행한 것만은 아닙니다. 역사적인 위인들은 부잣집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것보다 극난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 부모가 애국심을 가지고 나라를 사랑하는 부모일수록 그 인연을 따라 길리움을 받은 아들딸은 미래의 나라를 창건하고도 남을 애국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애국자의 출생이 거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적인 것은 당대에만 웃는 것입니다. 그 웃는 것이 누구와 더불어 웃느냐? 상대와 더불어 웃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더불어 웃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돼요. 행복이라는 것은 자기 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 관념에 있어서….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그런 거라구요. 좋다는 말은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 관계를 얼마만큼 동원시켜서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기쁨의 비율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냐.

누구나 좋은 일이 있으면 세계적으로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지요? 나쁜 일이 있으면 세계적으로 숨기려고 합니다. 그것이 왜 그런지 알아요?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거예요. 누구에게나 드러내고 싶지 않다 이거예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영영 없어진 가치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자기를 위한 행위입니다. 욕심을 통해서 나타난 결과의 흐름은 그런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그러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해도 그것은 자랑을 못 합니다. 그렇지만 남을 위하고 전체를 위하는 자리에서 그런 일을 했다면, 아무리 비천하고, 아무리 악하고, 아무리 말할 수 없는 자리에서 그 일을 이루었 더라도 이것은 아무리 높은 자리에 가더라도, 높은 자리에 가면 갈수록 더 당당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선악이 가는 길은 엇갈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을 성사시키고 뜻을 이룬다는 것은 오늘의 행복을 취하고 오늘의 자기들을 중심삼고 만족을 취하는 사람으로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다 큰 선의 목적을 추구하는 그 길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현재에 만족하고 현재의 안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