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집: 나를 아느냐 1966년 07월 0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76 Search Speeches

심정적인 탕감의 가치

선생님이 여러분들과 함께 횡적인 입장에 서는 것은 이 나라가 횡적으로 인연맺어지는 동기도 되는 것이다.

이 기간은 7년노정을 넘어가는 막바지의 기간이다. 즉, 7년노정의 문을 닫는 기간이 될 것이다. 물론 이 기간이 짧은 기간이지만 심정적으로는 6천년을 탕감할 수 있어야 한다. 심정적인 탕감이라는 명사가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를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여러분은 최전선 초소에서 사탄과 싸우는 용사들이기 때문에 역사와 더불어 비참한 일들을 많이 겪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수고는 역사 이래 왔다 간 모든 선열들에 비하여 기간이나 여러가지 조건에 있어서는 결코 그 기준에 미칠 수 없으나, 심정적인 면에서는 그들이 우리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아브라함이 아무리 고생을 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와 같이 심정적인 입장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심정적인 면으로 하나님과 접하게 된 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아야 되겠다.

민족적인 사명을 위하여 안팎의 인연을 갖추어 나가야 하기에 축복이란 명사를 걸어 놓고 나가는 것이다. 7년노정은 고생하는 기간이므로 축복가정들을 삼천리 방방곡곡에 흩어 놓았다.

1960년대에는 내적 기준을 세우는 동시에 외적인 기준을 세워 연결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복귀의 인연이 연결된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외적인 완성을 거친 후에 내적인 완성, 즉 심정을 세웠을 것인데 타락했기 때문에 그 반대로 내적 심정을 먼저 세워야 한다.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하늘과 땅, 만물 전체가 서러움과 인연되었다.

예수는 내적 입장이고 이스라엘은 외적 입장이었는데, 내외가 잘 맞지않았다. 내적 기준이 깨짐으로 말미암아 외적 기준도 깨져 나갔다.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도 내외적인 관계에 있다.

심정적인 상처를 씻기 위해서는 심정의 인연을 복귀해야 한다. 외적 조건만 구비해서는 안 된다. 고로 복귀의 길을 가는 우리들은 시련과 고통을 피할 길이 없다.

오늘 여러분에게 하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나를 아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