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집: 하나님의 날과 통일교회의 사명 1970년 01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8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날의 가치

오늘날 우리가 맞이한 하나님의 날은 모든 것이 집중된 소망의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날을 맞이한 오늘 이 자리는 예수님 때의 사도들의 자리와 비교도 안 됩니다. 이러한 엄청난 내용과 결실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날이기 때문에 이날을 마음으로 축하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개개인의 마음은 어떠해야 하겠느냐? 아담과 해와 때의 가인과 아벨을 두고 볼 때 아벨이 이날을 축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노아 할아버지가 '그대들의 놀라우신 성상을 찬양할지어다' 하고 축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3대 믿음의 조상권을 가진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부터 '내가 수고하고 내가 어려움을 당한 것은 오늘 이 한 날을 맞기 위함이었거늘 그대들의 놀라운 성사를 찬양한다'고 하는 치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도 '우리가 나라를 찾아 세우기 위해 모세를 중심삼고 사막을 횡단하며 그 모든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갖추지 못하고 거두지 못하였던 이스라엘권을 이렇듯 마련해 주니 감사하다'고 하는 치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이 지금까지 소망의 실체로 고대하였던 실체기준을 이루지 못한 것, 즉 실체 자녀를 낳아 그들을 세계적으로 지도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한의 구렁텅이를 메울 수 있는 승리권을 중심삼고 예수와 성신의 입장에서 실체의 자녀를 품고 하나님의 날을 맞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면,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런 저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나는 이날을 위하여 얼마나 충성을 하고, 이날을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였으며, 이날을 위해 얼마나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이 가치 있는 날을 맞아 축하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이 자리에는 통일교회의 '통'자도 모르고 교회의 '교'자도 모르는 녀석들이 바람 쐬러 왔다가 걸려들어 가지고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어 앉아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렇게 데데하고 껄렁껄렁한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오늘날까지 선생님은 그렇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미 이 길을 나설 때에는 생명을 각오하고 나섰습니다. 천만 갈래의 시련과 수난의 길이 있을 것을 알았고, 수많은 화살과 총탄이 겨누고 있을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오십 평생 동안 어느 때든지 일선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도 일선이 되었고, 사랑하는 가정도 일선이 되었습니다. 통일교회를 따르고 자녀의 명분을 갖고 나오겠다던 사람이 원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언제든지 그 누구한테라도 배척받고 반박받고 공격받는 입장을 감수하면서 이 길을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에 선생님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날'의 가치와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날'의 가치는 다릅니다. 말을 들어 보면 알 듯한데 내용에 들어가면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런 내용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설사 양자권을 상속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사기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나름의 계획을 세워서 그 주인 앞에 알랑거려 가지고 양자가 되는 목적을 달성했다면 그는 그 양자의 이름으로 심판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양자라는 거룩한 이름을 앞세워 가지고 주인을 사기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절대 그러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제 3회 하나님의 날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1970년대를 시작하는 이 벽두에 있어서 지극히 의의있는 시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날은 하나님이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날이요,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그리던 날입니다. 이러한 날을 선생님이 50평생을 거쳐서 세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