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집: 아버지와 함께 1970년 04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79 Search Speeches

선생님의 책임

여러분, 오늘이 4월 19일인데, 4·19의거가 일어난 때가 10년 전이지요? 이 나라가 수난의 길을 걸어온 지난 10년을 놓고 여러분에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통일교회가, 또 선생님이 지금까지 세계사적인, 천주사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나오면서 고심하던 것이 무엇이냐면, 이 민족과 기성교회와 우리가 하나되는 그 한날을 어떻게 맞을 것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민족과 기성교회와 우리는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복귀섭리에 있어서 하나님이 시대적 사명을 짊어진 사람들을 보낼 때는 항상 어떻게 기성종교와 나라를 수습하여 하나되는 기점을 세울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은 언제나 기성종교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또는 기성세력으로부터 핍박받았습니다. 그러면, 신흥종교가 그 기성종교로부터 핍박받지 않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이냐? 기성종교 앞에 환영받을 수 있는 하나의 방향을 모색해 주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지 않고는 기성세력이나 기성주권 앞에 절대로 환영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성교회가 우리를 환영했더하면, 우리는 기성세력을 무난히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기성세계를 무난히 흡수할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말로는 몇십 초 이내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역사가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예수님과 하나되어 예수님의 길을 따라갔더라면, 오늘날 이 세계는 이같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죽음의 길을 이어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2천년 동안에 세계를 이렇게 발전시켜 놓았는데 예수님이 죽지 않고 뜻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았더라면, 세계가 얼마나 빨리 복귀되었을 것인가. 당시에 로마를 굴복시키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선생님도 역시 큰 사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가인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기독교가 바로 선생님의 가인의 입장에 있습니다. 기독교와 하나된 입장에서 보면 가인의 입장에 있는 것이 이방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와 이방종교와 나라를 목표로 해서 가야 합니다. 이방종교를 규합해 가지고 아벨의 입장에 선 다음에 국가를 규합해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그때에 예수님이 해결해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선생님에게도 똑같은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는 물론이요, 전체의 종교가 반대했습니다. 옛날의 요셉과 같은 입장, 죽으라고 원수에게 팔아 넘겨진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 백방으로 길이 막혀진 입장에 섰었고, 한군데도 뚫린 데가 없이 사방을 다 밀폐해 버리고 뚜껑을 해 덮어 내리누르는 것과 같은 운명길을 갔습니다. 그러한 이 나라 이 땅 위에서는 살 길이 없으니 딴 곳으로 가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의 운명이 그러하였고, 자랄 때도 그랬고, 그의 생애 전체가 그랬습니다. 사방을 막고 뚜껑까지 덮어 가지고 내리누르는 것과 같은 입장에 처하기 때문에 감쪽같이 피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를 책임지고 왔다 갔던 사람들이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길이 편하냐, 이 길을 가는 것이 편하냐를 두고 볼 때에, 뜻을 성사해야 된다는 문제를 제거한다면 오히려 죽음길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살 길보다 죽음길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짊어진 책임이 있기에 죽을래야 죽을 수 없습니다. 죽으래야 죽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성을 얼마나 들여야 되겠는가? 죄악 역사의 수많은 사탄과 격투를 해야 됩니다. 촌음도 방심할 수 없는 자리에 서서 해방의 문을 열기 위해 필생의 힘을 경주하여 틈을 넓혀 가야 됩니다. 복귀의 책임을 짊어진 사람들은 그렇게 걸어왔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