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집: 오늘과 내일 1973년 04월 15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87 Search Speeches

완성의 오늘을 맞이하지 못한 인간과 복귀섭리의 방향

오늘과 내일은 하나의 경계선과 같이도 생각되는 것입니다, 경계선. 이쪽 나라에서 저쪽 나라를 바라보게 될 때에, 이쪽 나라가 강하게 될 때는 저쪽 나라를 능히 흡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오늘 이 시간은 현재요, 금일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시간을 우리가 거슬러 올라가서 최초의 하나님 입장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하나님에게도 창조한 때의 오늘이 있었을 것입니다. 창조하는 그때는 이상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준비의 기간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를 끝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담 해와가 자라는 과정에 들어가게 되는것입니다. 이 과정을 실천시대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간을 거쳐 가지고 완성이라는 오늘을 보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창조이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완성의 오늘이라는 것을 인간이 맞이했느냐 하면 못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실천할 수있는 그날을 맞이했느냐 하면 못 맞이한 것입니다. 준비기준은 완료했지만, 실천기준을아직까지 넘어서지 못한 자리에 있는 것이 오늘날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입장인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바라는 소망의 기준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실천과정을 거쳐서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 기준을 바라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의 과업은 미완성으로 있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실천해야 할 길이 남아 있고 성사해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타락했다는 사실, 이것은 우리에게 비참한 사실입니다. 타락한 그날이 있었다는 사실, 그러한 오늘이 있었다는 사실, 이것은 전체를 부정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한 자로서 아무리 실천을 했댔자 그것은 하나님이 바라는 실천적 기준, 혹은 하나님이 바라는 완성적 기준과는 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준비를 잘 해 놓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냥 그대로 남길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한 그날은 하나님이 준비했던 그 사실까지도 부정시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인간중심한 복귀섭리를 볼 때에 준비된 끝에서부터 실천단계로 이을 것이 아니라, 준비나 실천의 모든 완성기준을 그냥그대로 남길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분야에 있어서 준비를 해야되고 새로운 분야에 있어서 실천을 해야 하고 새로운 분야에 있어서 완성을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편에 준비된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떠나 딴 자리에 가 가지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향, 이런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양심의 기준에서 더 바랄 수 있는 자리에 가는 것이 아니라 양심의 기준에서도 후퇴하는 놀음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했다는 사실은 준비한 것에 대한 슬픔을 다시 회상시킬 수 있는 자극적인 요소도 되는 것입니다.슬픔을 회상시킬 수 있는 동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슬픔을 가져 온 타락한 사람을 슬픔을 가져 오지 아니한 본연의 이상만을 가지고 준비하였던 그 세대, 그 자리의 기준에 갖다 놓기란 그리 쉬운일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타락한 사람이 아무리 복귀완성을 했더라도 타락하지 않고 이루어야 할 본연의 기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친구지간에 있어서도, 제일 가까운 친구 가운데서 한 친구가 자기와 반대되어 가지고 지극한 원수가 될 수 있는 자리에 있게 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타격을 준 그 친구가 나한테 나타나 가지고 다시 옛날과 같은 우정으로 돌아가겠다고 하게 될 때,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하는 거예요. 그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 앞에 있는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 입장이 아니냐 하는 것을 우리는 회상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 앞에 실수를 가져 왔느냐 하면, 창조의 위업을 뒤집어박고 인류역사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엄청난 실수를 가져 왔습니다. 자기에게 한한 문제로 결과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로 그 결과가 나타나는 실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문제에 위협을 주게 된것이요, 사랑문제에 위협을 주게 된 근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생명의 주체요 사랑의 주체인 하나님이 이러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릴수 없는 사실로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