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집: 전성시대 1967년 05월 2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64 Search Speeches

"선은 영원, 악은 순간과 보조를 맞"" 것"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는 끝이 있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은 역사가 길기 때문에 끝이 늦게 나지만 나쁜 일일수록 끝이 빨리 나는 것입니다. 선한 것은 영원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요, 악한 것은 순간과 보조를 맞추는 것입니다. 망하는 행락은 일시에 취하는 것이요 흥하는 행락은 영원에 취하는 것이니, 영원에 취할 수 있는 행락의 터전은 몸이 아니라 마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마음의 친구, 마음의 주님, 마음의 스승, 마음의 대왕, 마음의 나라, 마음의 사람, 마음의 세계를 그리워하며 그러한 이념을 표방해 나오는 것입니다.

종교가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좋은 것입니다」 대답들은 잘 하는군요. 얼마나 좋아요? 굉장히 좋지요? 종교는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종교를 통해서 '아! 좋은 길로 갈 수 있어서 좋구나!' 하고 느끼는 사람은 인생행로에서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느냐? 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마라톤 대회에 나가더라도 일등할 것이다, 모든 방면에서 언제나 세계 챔피언일 것이다 하면 맞는 말입니까? 챔피언은 챔피언인데 무슨 챔피언이냐? 마음 세계의 챔피언입니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갈래갈래 갈라진 마음들을 수습하는 데 있어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챔피언이라는 것입니다. 갈라진 마음들을 수습하는 방법이 어찌나 치밀하고 권위가 있고 능동적인지 사탄까지도 그 권내에 들어가면 살지 못하고 뛰쳐나갈 만큼 챔피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도의 챔피언이 인간세계와 종교세계를 관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종교를 정면적으로 반대해 가지고는 세계가 하나될 수 없고, 세계를 하나의 이상적인 국가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세계의 3분의 2가 종교권내에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이 세계를 전부 적화하겠다고 하지만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마음을 빼 버릴 수는 없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본론이나 변증법을 통하여 마음을 뺄 수 있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란 것은 절대로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챔피언이라고요? 「마음의 챔피언입니다」 예수님은 공자, 석가, 마호메트, 소크라테스와 같은 그 어떤 성현이나 철학가도 하지 못한 것을 수습할 수 있고, 그 누구도 갖지 못한 방법과 법도를 갖춘 챔피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모든 것은 천운과 박자가 척척 들어맞습니다. 그 시대권내에서만 맞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들어맞는 다는 것입니다.

응원을 할 때에 이왕이면 챔피언을 응원하고 싶을 것입니다. 3회전까지 경기를 하고 나면 4회전부터는 승세에 있는 사람을 응원하고 싶을 것입니다. 맨 처음부터 지는 사람을 응원한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지고 있을 때 선생님은 참 기분이 나쁩니다. 첫번엔 졌지만 두번째는 하나님이 보호하사 이기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번째는 자기 혼자서 싸워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맨 처음부터 이기는 사람을 후원하고 싶은 것이지 싸우다 지는 사람을 후원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상에 없는 그런 챔피언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영광입니까? 그러니 그분이 싸움터에 나가 싸울 때에 거기에 동조하고 몸부림치며 같이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지금까지 모진 싸움을 해 나왔습니다. 남들의 구경거리로 싸운 것이 아니라 목을 내놓고 싸워 나왔습니다. 싸움 중에 가장 무자비한 싸움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 역사 중에 기독교사에는 순교자가 많았습니다. 피를 뿌려 가면서 싸워 나왔습니다. 그 싸움은 세계를 정복할 때까지 계속될 치열한 싸움입니다. 그 싸움은 칼과 창을 가지고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다른 싸움과는 작전이 조금 다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세계를 통일하기 위한 어떤 절대적인 주체를 세워서 그 주체 앞에 절대적으로 순응하고 하나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의 완전한 주체 앞에 완전한 대상체가 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주장해 나왔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