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집: 이상적 가정교회 1986년 12월 21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335 Search Speeches

책임분담의 고개를 넘어야 천국- "어가

여러분들이 졸업장을 타려면 시험문제를 내주는 선생님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가 시험문제를 내고 졸업장을 타는 법은 없습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자, 그러니까 이 홈 처치라는 숙제를 내주는 사람이 있어야 되겠나요, 여러분들끼리 민주주의식으로 결정해야 되겠나요? 「숙제를 내주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숙제를 내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예요? 「아버님입니다」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그 참부모가 하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한번 잘못하는 날에는 영원히 걸리는 거예요.

이제 1988년분터는 홈 처치를 누구부터 시작했다는 역사가 나오는 거예요. 1988년 전까지는 이렇게 나왔지만 앞으로는, 그러니까 1988년 후 부터는 홈 처치 없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을 만날 필요도 없고, 선생님 말씀을 들을 수도, 연구할 수도 없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좋아하지 않는 다는 거예요.

그러니 미국에 홈 처치를 할 곳이 없으면 아프리카로 나가야 됩니다, 아프리카로. 나중에는 중공까지 가야 됩니다. 중공에는 사람이 많으니까 중공에 가야 된다구요. 그렇게 하면 세계에는 틀림없이 홈 처치 판도를 통해서 천국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거 있어야 될 것 아니예요? 열쇠가 있어야 될 것 아니예요? 그래서 오늘부터 홈 처치를 새로 시작해야 되겠다구요. 1977년부터 한 7년 동안 이 홈 처치에 대해서 얘기했다구요. 말만으로 해서는 안 되겠다구요.

자, 여기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홈 처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그래, 천국은 다 가고 싶어요? (웃음) 선생님도 책임분담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어요? 안 그래요? 일생 동안 책임분담의 고개를 넘기 위해서 고생했다구요.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느냐? 종의 종에서부터 종, 양자, 서자, 아들, 어머니, 아버지 입장을 거쳐 하늘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것도 8단계예요.

자, 사탄세계가 이렇게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돼 있는데, 여기에 내려가면 사탄은 이 이하로는 더 못 내려온다구요. 사탄이 여기서 지키고 있어요. 나는 여기로 해서 어디로 가야 되느냐? 여기서 사탄과 같이 있었는데, 나는 여기서 내려와 가지고 어디로 가느냐? 이쪽으로 가는 거예요. 여기로 해서 이렇게 가는 거예요. 이렇게 올라가는 거예요.

자, 여기서 개인기준을 딱 넘어서게 되면 여기까지…. 사탄이 여기까지 따라와서는 안 돼요. 그다음엔 가정기준을 중심삼고 3단계 이상 못 올라간다구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이 위에는 뭐냐 하면 전부다 부모님이 다 이겼다구요. 요 기준이 뭐냐 하면 종족기준이예요. 그것은 어디서 연유한 것이냐? 어디서 연유하게 된 거예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간 것은 종족기준을 중심삼고 기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해방하지 않고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매번 핍박받으면서 여기까지 올라왔다구요. 그래서 반대권이 없어졌어요. 반대권이 없어지고 환영권이 벌어진 거예요. 때가 달라진 것입니다. 부모님은 자식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핍박받는 자리에 내세우려고 그러지 않습니다. 그걸 전부 다 평정할 때까지, 여러분들이 핍박받지 않고 최소한도의 환경에서 책임을 완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온 거예요.

이제부터 360집이면 천만 인 가운데서 얼마예요? 미국 뉴욕이 얼마예요? 백팔십 몇만? 뉴욕을 100만 명으로 잡더라도 36가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예요. 36가정이 여러분들 활동권 내에서 기다리고 있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천만 명, 천만 명으로 잡지요? 「예」 천만 명으로 잡으면 36가정이 있으니 한 가정에 서너 사람씩 기다리고 있다구요. 사육은 이십사(4×6=24), 이사는 팔(2×4=8) 해서 104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가요? 사육은 이십사(4×6=24), 그리고 삼사는 십이(3×4=12) 해서 144. 144명이 통일교회를 환영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다는 거예요. 홈 처치 360가정 위에 저만한 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