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집: 심정과 절대적인 신앙 1970년 08월 09일, 한국 부산 동명장여관 Page #84 Search Speeches

인간을 영원하게 하" 것

여러분들이 생애를 거쳐가는 데 있어서 그 생애의 추구점이 있어야 됩니다. 그물로 말하면, 벼리가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인생에 있어 그물의 벼리와 같은 것이 뭐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닻을 내리게 되면 무한한 세계까지 들락날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심정을 느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한국에서 기도하더라도 세계에 널려 있는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는 경지에 도달하면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어떤 사람이 어떤 심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알려고만 하면 그것이 전파같이 전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적인 조건이 성립된 위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상대적인 인연을 통하여 오는 것은 영속적이 아닙니다. 주체적인 내용을 통해서 흘러가야 영속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주체적인 내용을 결정지어 주는 것은 상대적인 내용이 아니라 주체적인 본연의 인연이 될 수 있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죽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인생길을 가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추구해 나오는 하나님의 인격의 중심이 무엇이냐? 진리가 아닙니다. 그 중심은 심정입니다.

그 심정의 극을 초월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자리에 들어가면 내 죽음의 고통이 생각되지 않는 것입니다.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이라 해도 그 죽음의 고통을 잊고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품겨서 잠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최후를 마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땅에 왔다 간 사람으로서 그 누구보다도 최고의 선물을 안고 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다 26:39)"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그 경지는 최고의 경지인 것입니다. 모든 고통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경지입니다. 이 땅 위의 사망권을 극복할 수 있는 힘에 접하는 그런 자리를 어떻게 모색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나 일을 할 때나 무엇을 하든지 그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봄날을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일생 동안 봄날을 노래하면서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나이가 많아도 나이가 많다는 인식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누구나 다음은 다 그렇습니다. 백 살 살기가 힘들다는 말이 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그렇잖아요? 나이 많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처녀 총각의 마음이라는 거예요. 자기 마누라가 쪼그랑 할머니지만 할머니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꽃 피웠던 그런 시절을 표준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부로 맺어졌던 그날을 중심삼고 죽을 때까지 그대와 나는 하나라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늙었다고 해서 밉게 보는 것이 아니라 옛날의 그 인연을 중심삼고 일생 동안 그 느낌을 간직하며 모든 것을 포용하고, 그것으로 서로의 생애를 감싸 주고자 하는 그런 사랑을 가진 부부는 행복한 부부입니다. 쭈그러졌더라도 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그러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그 부부는 적막한 부부입니다. 있으나 없으나 한 부부 라는 것입니다. 꽃을 볼 때, 동백꽃이면 동백꽃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동백꽃으로서의 변할 수 없는 본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늙는다는 것은 뭐냐?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늙는다는 것은 새로운 봄의 세계를 향해 찾아가는 것입니다. 육체는 비록 늙었지만 그 내심에 피어 오르는 근본적인 사랑, 그 사랑은 외적인 것보다 더 멋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런 사랑을 가져야만 행복할 것입니다.

부자지간의 인연도 그렇습니다. 아들딸들이 어렸을 때에는 무릎에 앉혀 놓고 귀여워하면서 애지중지 기르지만 그 자식이 나이가 많아지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부모의 사랑은 자식이 나이가 많다고 해서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더욱더 입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애와도 바꿀 수 없는 내용을 중심삼고 정성을 들이는 가치는 날이 가면 갈수록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의 사랑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아들이 된다면 효자라는 이름을 갖지 않더라도 효자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선을 추구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젊었을 때 이상으로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될 때는 그 자식이 곧 효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