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집: 최후의 한때와 나 1970년 03월 12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299 Search Speeches

예수님의 죽음으로 승리의 한때를 맞지 못한 하나님의 슬""

가정적 기준을 잃어버린 예수님에게는 교회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나서는 걸음이 공생애의 첫번째 걸음이었고, 40일 금식 직후의 예수님의 입장은 세례 요한의 입장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잃어버린 가정적인 기준을 수습하기 위해 이런 제 1차적인 노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거기서 교회적인 기반이 무너지더라도 대제사장 가야바 같은 사람들이 국가적인 기반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례 요한적 사명을 대신하여 그 기대를 갖추고 나갔다면, 예수님이 국가적인 기준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그런데 그것도 무너짐으로 말미암아 가정적 기준을 상실하고 교회적 기준을 상실해 버린 예수님은 국가적 기준을 갖출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적 기준을 중심삼고 4천년 역사를 섭리해 나온 하나님의 뜻이 진전될 수 없는 입장이니,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년 만에 승리의 한때를 맞이하여 가슴에 박혀 있던 원한의 못자국을 뽑아내기 위해 소망의 아들을 세우셨으나 인간들은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위해서 유대 나라를 준비하셨고, 유대교를 준비하셨습니다. 또 그를 위해서 요셉 가정을 준비하셨고, 이방 나라를 중심삼고 세 동방박사를 준비하셨습니다. 이같이 모든 환경이 준비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환경의 대표자들이 책임 다하지 못하고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비통한 사실로 인해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그 이상의 슬픔을 느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아담을 복귀하기 위한 복귀의 터전을 모색하기 위해 수난의 길을 걸어오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제2의 복귀를 위한 길을 다시 모색해야 하니, 그 하나님의 입장이 얼마나 비참하셨던가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말만 가지고는 모릅니다. 그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부활한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슬프고 비통한 사실인가 하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입장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야 합니다. 세계적인 피를 흘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국가를 넘어 세계로 향하는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국가를 넘지 못하여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를 넘어 세계로 가야 하는 기독교는 피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독교는 순교의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런 순교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느냐? 아닙니다. 순교를 당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천당이란 개인주의적인 사상이 중심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를 믿어 왔던 신앙자들이나, 혹은 시대시대마다 기독교를 지도하며 복귀섭리를 책임져 나온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자신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이 소원이었지 믿고 뜻을 이루어 드리겠다고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개인적인 신앙의 관점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기독교의 2천년 역사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개인을 중심삼고 구원의 목적을 세워 나오는 그 배후에는 누가 국가적인 혹은 세계적인 판도를 연결시켜 나왔느냐?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나오셨습니다. 수많은 선교사들을 외국에 파송하여 자신들이 개인구원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보다도 하나님 앞에 특별한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이방 사람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복귀섭리를 담당한 특별한 나라면 나라일수록 기독교가 발전해 나오는 데있어서 수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섭리도상에 있어서 귀중한 임무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예수님이 국가로부터 세계를 넘어가지 못하고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땅 위에 맺혀진 실체적인 탕감의 기준을 세계적으로 벌여 놓았기 때문에 기독교의 뜻을 전통적으로 상속할 수 있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난의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후를 남겨야만 섭리의 중심 민족이 되는 것이기에 그러한 민족이 국가로 가는 입장에서 어떤 종파적인 입장에 몰려 희생당하는 것도, 국가적으로 수난을 당하는 비참한 자리에서 우왕좌왕하는 것도 필연적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