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집: 나를 알자 1986년 01월 21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77 Search Speeches

타락으로 말미"아 행복의 길을 찾아가기 어렵게 된 인간

그러면 행복한 길을 찾아가는 길이 쉬운 길이예요, 어려운 길이예요? 「어려운 길입니다」 불행한 길을 찾아가는 길은 쉬운 길이예요, 어려운 길이예요? 「쉬운 길입니다」 왜 그래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행복한 길을 찾아가는 것이 왜 쉽게 안 되고, 불행한 길을 찾아가는 것이 쉽게 되느냐? 행복한 길을 찾는 것이 왜 어렵게 됐어요?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공통 분모로 인간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이상의 세계를, 자유의 세계를 추구하는 본성적 유대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이와 같은 상충적인 내용이 되었느냐는 거예요. 상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쉬울 수 있는 환경으로 이것을 끌어 가야만 될 텐데 왜 어려워요? 이 상충적인 요인이 어디서 생겼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마음은 그렇잖아요? 세상을 보니 행복한 길을 찾아가기는 힘들어요. 불행한 길을 찾아가는 것은 쉽다는 거예요. 이게 본래부터 그런 것이예요? 참사랑을 중심삼고 보다 귀한 것을 공통분모로 해 가지고 절대적으로 하나되기 위한 이런 이상의 기원에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환경도 이 이상을 도울 수 있고, 옹호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왜 역설적인 환경의 결과가 생겨 났어요? 이걸 누가 만들었느냐 말이예요. 하나님이 이것을 만들었으면 하나님은 포악하고 우리의 영혼이 신임할 수 없는 하나님이예요. 이런 등등 복잡한 문제가 많다구요.

이런 것을 볼 때, 이것은 우리가 고장났기 때문에, 타락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결론 이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어요. 알겠어요? 「예」 타락했다는 관념을, 타락했다는 개념을 집어넣지 않고는 지금까지 말한 모든 이상, 절대 가치있는 것을 공유하겠다는 것을, 하나님과 우리와의 참사랑을 말한 그 근본을 중심삼고 모순적인 결과가 되었다는 사실을 해결할 길이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부정적 하나님의 자리에 설 수 있었느냐? 그렇다면 어느 누군가가 부정적 입장에 서지 않고는 이런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인데, 왜 그러냐? 타락했기 때문이예요. 오늘날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소위 지성인이라는 사람들은 '타락은 무슨 타락이야' 한다구요. 타락의 개념을 모르고 있어요. 병이 났는데도 병이 난 것을 몰라요. 암에 걸렸는데도 죽기 전에는 몰라요. 그것과 딱 마찬가지예요. 이러한 실정을 놓고 우리는 타락의 개념을 받아들여야 되겠다는 거예요. 이건 여러분들이 앞으로 학교에 가서 이론 투쟁할 때 필요하다구요.

이러한 실제 사실을 놓고 볼 때에, 타락한 인간은 둘 사이에서 부정당하든가 부정하든가 하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이런 모순적 결과가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중간에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공인하지 않고는….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 타락이라는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세계에 있어서 얼마나 귀한 말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사실을 통고해 주고 이런 사실을 해결할 수 있는 명답 중의 명답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응?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