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집: 우국지사 1974년 09월 01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294 Search Speeches

우국지사라면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오늘 이 뉴욕에서 여러분 천 명이 넘는 사람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에, 1천만이 살고 있는 이런 도시 가운데서 만 명을 대해 가지고 한 사람이 공격한다는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걸 바라볼 때에 상대도 할 수 없는 수라는 것을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싸움에 있어서 우리가 우위에 서지는 못했지만, 기필코 그들을 끌고 갈 수 있다는 신념이 앞서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천이 만이 되고, 만이 십만, 백만이 돼 가지고 뉴욕 전시민의 절반 이상을 동원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겁니다.

만일에 이 뉴욕에서 절반을 동원할 수 있는 통일권을 만든다면 이곳은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하나의 초점 도시가 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는 뉴욕이 대표적 도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계의 사탄 본거지를 격파하기 위한 작전을 하는 용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사탄이 역사시대에 개인을 투입하고, 가정을 투입하고, 종족을 투입하고, 수많은 민족과 국가를 투입해 가지고 하늘나라를 공격해 왔던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그와 같이 동원할 수 있는 기반을 빨리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민족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런 선발대가 될 것이냐 이겁니다. 누가 먼저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이 될 것이냐, 누가 먼저 난 못 가겠다고 하겠느냐? 여기에서 누가 먼저 죽겠다고 하겠느냐, 누가 먼저 희생하겠다고 하느냐? 여기에는 두 갈래 길의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천 명 가까운 사람들이 있지만, 이 천 명의 절반은 그렇다고 말하고 다른 한편은 이렇다고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국지사가 되려면, 우국지사라면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내자신에 있어서는 식구들의 분립이란 있을 수 없다, 내 자신에 있어서는 그 나라와 그 백성과 그 뜻을 세우기 위해서 지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내 생명을 넘어서라도 가야 할 운명을 짊어진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길도 달갑게 가겠다 하는 사람이 우국지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목적을 달성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보고 인류가 해방되는 것을 보기 전에는, 내가 기뻐할 수 없고 나 자신이 해방된 사람이 될 수 없다 하는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우국지사일 것입니다. 이 눈으로 바라본다면, 이 눈은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서 하늘나라를 바라볼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것이다 이겁니다. 그러한 사람이 우국지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그와 같은 자리에 섰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제자를 바라볼 때에는 그 제자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그 제자를 통해서 미래의 하늘나라와 하늘나라의 주권을 바라본 것입니다. 예수가 말하고 행동한 것은, 그들을 위해서 말하고 그들을 위해서 행동했을 뿐만이 아니라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위해서 말하고 행동한 것입니다. 오늘의 행동이 그 나라와 연결되지 않는 그런 무엇이 있게 될 때 여기에 근심한 분이 예수님이 아니었더냐.

그러한 관점에서 십자가를 통하여 죽어가야 할 예수가 다시 와야 한다는 말을 남기는 자리에 선 그 입장이 얼마나 심각했겠느냐, 지금의 입장은 버리지만 미래의 입장을 얼마나 추구하는 입장에서 말했겠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돌아가는 그 운명 자체는 비참했지만, 그 운명을 헤치고 승리하는 것은 영광이기 때문에, 그 영광을 바라보고 십자가의 고개를 넘었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이 이 뉴욕에서 활동하는 데 있어서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으면 그는 회개해야 됩니다. '아 일곱 시부터, 새벽부터 내몰아 가지고 저녁 열 한 시 반, 열두 시에 돌아오다니, 이런 일이 어디 있어? 불평하는 사람은 하늘의 백성, 하늘의 우국지사가 될 수 없다 이겁니다. 24시간을 활동한다 하더라도 기쁜 일은 하나도 없다구요. 전부 다 시달리는 것밖에 없다 이겁니다. 지금의 여기는 기뻐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이겁니다. 기뻐할 수 있는 곳을 향하여 가는 길이기 때문에 기뻐하면 안 된다 이겁니다. 여기서 쉬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쉴 수 있는 곳을 찾아가기 때문에, 여기서 쉬었다가는 영원히 쉴 곳을 잃어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여러분, 나라를 잃어버린 한 왕이 있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세계 최고의 나라였던 그 나라를 어떤 원수한테 빼앗겨 가지고 유린당하는 그 나라의 백성을 바라보는 왕의 마음이 어떻겠느냐 이겁니다. 백성이 고생하는 것도 그렇지만, 자기 직계 아들딸과 아내가 원수의 수중에서 노예가 돼 가지고 신음하는 것을 바라보는 그 왕의 마음이 어떨 것이냐 이겁니다. 그걸 바라보는 왕이 잠을 잘 수 있고 쉴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그와 같이 신음하는 자리에서 백성은 그 왕을 중심삼고 잃어버린 나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를 잃어버린 왕족이, 혹은 남편을 잃어버린 왕후가 그 왕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