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집: 참을 찾아서 헤매이는 인류 1958년 12월 2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79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 자리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인물은 자기를 주장하고 나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사에 남아질 인물이라 할진대 그는 민족을 붙들고 나선 사람이요, 사회적인 인물이라 할진대 사회를 붙들고 나선 사람이요, 세계적인 인물이라 할진대 세계를 붙들고 나선 사람이요, 하늘적인 인물이라 할진대 하늘을 붙들고 나선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죄인 중에서도 부모를 죽인 용납받을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어느 누가 욕을 해도, 핍박을 해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몰림뱅이가 되어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슬픔과 역사적인 분함을 느껴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할 여러분입니다.

그러면서도 욕하는 형제를 붙들고 눈물지을 수 있는 곳이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상에서 자기를 치는 자를 오히려 염려하고 그를 위해 눈물 흘리시며 기도해 주시던 예수님의 심정, 이런 심정을 품고 가는 길이 참인간이 가는 전형적인 길이요, 골수에 사무쳐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제물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모두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은 이러한 역사적인 제물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제물은 어떠한 존재이뇨.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만민이 기뻐한 후에 비로소 머리를 드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전에 머리를 들었고, 만민이 기뻐하시기 전에 머리를 들었다면 깨어집니다. 기독교가 만민을 위하여 봉사해야 할 사명을 지고 있는데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면, 만민을 위해 제물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면 개혁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왕의 왕이요 하늘의 황태자이신 예수께서도 기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물로 오셨었던 연고입니다. 영계(靈界)에 가서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지상의 성도는 기뻐하여도 제물이신 예수는 기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만민이 기뻐한 후여야 비로소 예수가 기뻐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 날이 재림의 날입니다. 이것이 제물이 가는 길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민족이 받는 모든 핍박을 바라보게 될 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반만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우리 민족은 갖은 고생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슬픔이 있어도 어디 가서 호소할 줄 모르고, 분함과 억울함이 있어도 호소할 줄 모르는 가운데 이 민족은 걸어나왔습니다. 그러면, 민족을 붙들고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아와 같은 이 민족이지만 우리끼리 손을 붙들고 통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민족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형제의 잘못이야 있든 없든, 하늘이 허락한 같은 핏줄기와 뼈살을 가지고 태어난 형제이니, 자기 개인의 사정을 넘어서서 부모의 역사적인 혈통과 심정에 결합하기 위해 울 줄 아는 아량있는 사람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 청년들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청년들의 피끓는 정열이 있다 할진대 그 정열을 어디다 기울일 것인고? 일신의 출세와 욕망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일개인의 한계권내에서 종결될 것입니다. 인간의 본래 이념은 무한대의 선을 넘고 넘어서 하나님을 붙들고 기뻐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 본래의 이념을 위하여 그 정열을 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민족이 거쳐온 역사노정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할진대 그 섭리의 종국에 하나님은 어떠한 무리를 요구하실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울 줄 아는 모습일 것입니다. 하나의 뜻에 엉키어 울고, 하나의 심정에 엉키어 울고, 하나의 행동에 엉키어 울면서 먼저 제물이 되겠다는 무리들입니다. 하늘은 그러한 무리들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천년 전 예수는 인간을 대하여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표면적으로 생각할 때, 이런 모순되고 엉터리같은 말이 어디 있습니까? 이해할 수 없는 말같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잃어버리고 타락의 행로를 거쳐나온 인류가 역사의 종점에서는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다 깨져 나갈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것을 막아 주기 위하여 그러한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만일 그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역사가 벌어졌던들 2천년 동안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