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집: 만일 하나님이 없었더라면 1973년 07월 22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304 Search Speeches

예수님으로 인한 "셉가정의 불"

요셉이 예수를 잘 받들었느냐 이거예요. 요셉부터 문제가 되는 거예요, 요셉부터. 요셉은 마리아의 복중을 통해서 태어난 그 아들이 누구 아들인지 알았어요? 약혼녀가 잉태를 하여 애기를 떡 낳아 가지고 끼고 젖먹이는 것을 볼 때 어땠겠어요? 맨 처음에는 천사가 꿈에, 비몽사몽간에 나타나 가지고 '야 너 마리아를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데려와라' 해서 데려다 왔지만 데려와 가지고는 요셉이 마리아를 대해서 '야야 그래도 내가 사지사판에서 너를 구해 준 네 남편 요셉이 아니냐. 네 생명의 은인이 아니냐' 이랬어요. 그때에는 처녀가 애기를 배면 당장 돌에 맞아죽는 때였어요. 그런 입장에서 요셉이 마리아를 대하여 사정 얘기하기를 '여보 마리아, 그건 그렇고. 다 그런 사연 가운데에 있는데, 내가 당신의 생명의 은인이요 사지에서 구해 준 보호자와 같은데 나에게까지 비밀이 있어서야 되겠소?' 하고 물었을 거라구요. '자, 그러면 복중의 애기아버지가 누구지?' 하고 물어 봤겠어요, 안 물어 봤겠어요? 남자들, 대답해 보라구요. 여기에 처음 온 남자가 있으면 대답해 보라구요. 물어 보고 싶었겠어요, 안 물어 보고 싶었겠어요? 대답해 보라구요. 물어 봤겠어요, 안 물어 봤겠어요?「물어 봤습니다」 그건 안 물어 보는 것이 멍청이요 바보요 멍텅구리라구요. 물어 보게 돼 있다구요. 떡 물어 보는데 마리아가 말하기를 '아 내 복중에 있는 애기는 성신으로 잉태되었소' 그거 대답 잘했어요? '이 요사스러운 것아, 내가 생명의 은인인데도 나까지 속이려고 그래?' 하고 당장에 방망이로 치고 싶은 마음이 났을 거예요. 그러한 가정적 불화의 일면이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어요.

성경을 가만히 보게 되면 참 재미있다는 거예요. 예수 어머니하고 예수하고 요셉하고 사흘길로 예루살렘에 떡 가 가지고는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다가 제사날을 지내고 난 뒤에, 예수를 남겨 놓고 사흘길을 갔다가 다시 돌아가서 예수를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걸 또 오늘날 전통적인 기독교에서는 다 좋게 생각하지요. 천만에? 보라구요.

어린 예수를 사람이 많은 데에 데려갔다가 그냥 두고 둘이 돌아올 때에 곡절이 있어서 돌아왔겠어요, 예수를 잊어버리고 돌아왔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러고 싶어서 그냥 돌아왔겠어요? 곡절이 있었다는 거예요. 언제든지 마리아는 예수 때문에 고통을 느꼈다구요. 요셉의 눈치에 걸려 들지 않으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면서도 말다툼을 했을 거라구요.

예수 때문에 말다툼을 했는데 요셉이 예루살렘에 가 가지고 예수를 놓고 돌아가며 마리아에게 '당신 가겠으면 가고' 하며 가는데 안 따라갔겠어요? 요셉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서 할수없이 예수를 뒤에 두고 따라 가지 않을 수 없는 곡절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3일만에 동네에 떡 가니, 동네 사람들이 예수를 데리고 간 것을 다 알고 있는데 그 어미 아비가 그냥 돌아오는 것이 말이 돼요? 동네에서 체면을 세워야 되겠으니 할수없이 사흘 후에 다시 올라가서 예수를 데리러 가니 예수는 제사장들하고 성경 토론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마리아가 예수한테 말하기를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할 때, 예수가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했지요. 그걸 거룩한 말로 생각하지만 난 그렇게 안 알아요. 내가 듣고 배워서 이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구요. 사실이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어미 아비가 돼 가지고 사흘씩이나 버리고 가서 이게 무슨 수작 이냐 이거예요.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게 도리어 이치에 가당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