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집: 하늘이 주관하는 세계 1972년 07월 3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21 Search Speeches

대상이 되기 위해서" 주체의 "건 앞- 일치되어야

'하나님은 본래부터 나와 하나다, 하나다' 하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걸음 가면 하나님과 몇 걸음 떨어지느냐 하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얼마만큼 떨어져 있느냐? 내가 다섯 걸음을 가면 하나님은 몇 발자국 떨어져 따라오느냐? 이렇게 생각하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틀림없이 따라온다는 거예요. 자기가 태어날 때 열 발자국의 거리를 갖고 태어났으면 하나님은 항상 열 발자국 뒤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그 사이를 점점 가깝게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뭐, 하나님이 올 수 없다구요. 내가 하나님을 찾아가야 됩니다. 거꾸로 가는 거예요. 그래야 될 것이 아니예요? 그래서 신앙길은 거꾸로 가는 것입니다. 거꾸로 가는 거라구요.

뭐, 여편네 사랑하고 남편 사랑하고 자식들을 품고 가는 길이 아니라구요. 거꾸로 가려니 세상과 다르다는 거예요, 그 법이. 입산수도 하려면 세상과 멀어지는 거예요.

잘나나 못나나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인데 어찌하여 하나님을 따라갈 수 없느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하나님이 조금 앞서 가는 거예요. 이렇게 돼 있다구요.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신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사악한 세상이라도 내 발걸음보다 내 아버지의 발걸음이 앞서야 되는 것이지 내가 앞서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손을 들더라도 나보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간절하게 들어야 됩니다. 뭐든지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또, 내가 보는 것도 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주체의 요건 앞에 일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대상의 인연이 성립될 수 있는 기본 원칙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주체와 대상이 일치하게 될 때, 사랑의 인연은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생활 감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감정과 공감된 감정을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거예요. 내가 그래요. 혼자 있으면 '아버님' 하고 나도 모르게 부르게 되는 거라구. 그러면 '오냐' 하는 느낌을 받아요. 일체되면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누가 나를 주관하고, 지도하고 있다구요 그런 생활권내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있다 없다 하는 것이 문제가 돼요? 어려움에 부딪히면 반드시 나를 옹호해 주고 그곳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을 아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저버리고 갈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