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집: 뜻을 대하는 우리들 1972년 08월 1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5 Search Speeches

선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 방안

만일 인간만이 선과 악을 해결해야 할 책임을 졌다면, 그 인간은 얼마나 비참하겠느냐? 선과 악을 해결해야 할 책임이 인간에게만 있다면 그 인간은 과연 비참한 것입니다. 왜 그러냐? 역사 이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깃발을 높이 들고 몸부림치며 달려들던 사람들은 다 쓰러지고 함정에 꺼꾸러졌습니다. 절망의 장벽에 부딪쳐 신음과 더불어 후회의 한을 남기는 인생살이를 하다 간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만이 선이면 선, 악이면 악을 해결지어야 한다면 그 인간은 비참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선이 무엇이냐? 도대체 악이 무엇이냐? 우리는 그 선과 악을 가려 잡지 못하면서도 선은 다 좋아합니다. 왜 좋아하느냐? 악은 다 싫어하는데 그 악은 왜 싫어하느냐? 상대적인 요인을 추구하기 전에 자기 자체에 있어서 그 비판 기준을 확립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결국은 내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선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느냐? 아니면 선의 파탄자가 되어 있느냐?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에게 귀결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 그러한 주체적 입장에 서 있는 나에게는 이러한 선을 해결 지을 수 있는 힘이 있느냐?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럴 수 있는 환경을 가졌느냐? 아무런 환경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갈 것이냐? 자신을 가지고 1년, 10년, 일생이 아니라 몇 세기의 역사시대라도 뚫고 나갈 수 있는 어떤 확실한 목표라도 있느냐? 그것이 없게 될 때는 수천 년을 흘러 나온 역사를 새로운 선의 방향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면 선이고 무엇이고 다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만일 이러한 것으로 신음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선악의 책임을 지워 온 역사라면 이는 절망이요, 이는 최후가 될 것입니다. 또 그 사람만이 현시대를 책임져야 한다면 그는 비참한 운명에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또 다른 무엇이, 선과 악을 중심삼고 책임져 나올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인간 외에 또 다른 어떠한 것이 있다면, 그런 자리에서 선악을 해결할 수 있는 주체적인 입장에 선 어떠한 분이 있다면, 인간은 이 또 다른 분과 하나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만일 그런 자가 있고 그런 분이 있다면 그분과 하나되고 싶은 마음, 그분과 의논하고 싶은 마음, 그분과 같이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그런데 환경에서 지극히 고립된 자아를 발견하고, 그 수습 방안을 찾을 수 없는 처지에서 신음하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할 때, 그 자리에서, 나만이 이런 것이 아니라 인간 외에 또 다른 어떤 분도 역시 이러한 자리에서 신음하고 계시다면 그분과 어느 정도로 하나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안 그래요?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의 사정을 잘 아는 것입니다. 밥을 굶어 봐야 배고픈 것을 아는 것이고 가난해 봐야 가난한 살림살이의 사정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비참한 자리에서 선악의 자주적인 판단자로서 나서기를 바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 자신을 중심삼고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가망성이 없는데 그 책임을 질 수 있는 무엇이 있다 하게 되면, 이것은 희소식 중의 희소식일 것입니다. 인류역사에 다시 없는 최대의 복음의 소식이 아닐 수 없을 것이 아니냐.

그러면 나는 얼마만큼 그와 더불어 하나되기를 바라고 있느냐? 환경에 부딪치는 모든 요인이 극에 달하면 달할수록 그것이 자신을 어떠한 주체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극한 힘이 강할수록 그분에게 접근할 수 있는 소망의 여건이 될 것이 아니냐. 그러한 길에서만이 새로운 인간 삶의 선한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길 외에는 찾을 수 없다 하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선한 그 무엇…. 이건 신이라도 좋고, 아무것이라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책임질 수 있는 분, 내가 의논할 수 있고 내가 거기에 하나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역사시대의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내용을 지녔을 것입니다. 나는 몇십 년, 혹은 일세기 미만의 생애를 가진 권내에서 신음하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했을 때, 주체적인 그 무엇이 있다면 그는 역사시대를 그와 같은 관점에서 나왔을 것이고, 이 시대를 그와 같은 관점에서 고찰해 가지고 거기에 대한 모색 방안을 갖고 주장해 나오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보다 나을 수 있는 선이면 선의 판단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냐 할 때,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인간 자체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또 다른 우리 인간 이상의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앙이 출발한 것이 아니냐. 보다 본성적인 출발은 이러한 자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