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집: 불쌍하셨던 예수님 1964년 05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64 Search Speeches

예수님을 해방시켜 "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섭리적인 입장에서 책임과 사명을 하여야 할 예수님, 왔다 간 이후 지금까지 2천년사를 짊어지고 속죄의 사명을 하고 있는 예수님은 불쌍한 분입니다. 언제 한번 하나님과 같이 살아 본 적이 있습니까? 성경에 그런 말이 있습니까? 하나님과 같이 산다고 나와 있어요? 기도하고 있다고 했지요. 언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적이 있습니까? '아버지여! 이제 당신의 아들딸이 있사옵고, 만국이 있사옵고, 만민이 있사옵고, 천하가 있사옵고, 이는 본래의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은 선의 세계와 같사오니, 아담 해와의 승리의 기반 위에서 받아야 했던 영광을 나로 말미암아 받으시옵소서' 해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는 데는 어떻게 오느냐? 구름 타고 와요? 구름을 타고 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게 믿어야 할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간 예수는 그러한 자신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불쌍하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를 보내기 위해 수고하신 하나님이 목적의 한 날을 맞지 못하고 슬픔의 한 날을 맞이했으니 불쌍하시구나! 이스라엘이 불쌍한 민족이 되었구나! 제1이스라엘이 망하여 하나님의 축복권내로 다시 부활해야 하니 불쌍하구나! 하고 느꼈던 것입니다.

기독교 2천년사를 바라보시며 우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세 번 기도가 무엇 때문이었느냐? 자신이 십자가에 죽어 가면 이스라엘 후손들이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런 기도를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육 아울러 구원을 받아야 할 것인데, 그러지 못하고 예수님이 원한을 품고 가니 후손들도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후손들의 원한을 지상에서 탕감복귀시켜야 할 예수님은 이 땅에 다시 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땅 위의 골고다 산정에 하나님의 한이 맺혀 있고 이스라엘 민족의 한이 맺혀 있고 그 후손과 인류의 한이 맺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리적인 골고다의 길이 기독교에 남아진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기독교가 개인적인 골고다, 가정적인 골고다, 종족적인 골고다의 길을 거쳐서 이제 세계적인 골고다의 산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간 예수는 역사적인 슬픔을 품은 예수요, 시대적인 슬픔을 품은 예수요, 미래적인 슬픔을 품은 예수였습니다. 억울한 심정을 품고 간 예수였습니다. 골고다 산상에서 십자가를 때려부수고 원수들을 심판하고 총진격해야 할 예수가 억울한 심정을 품고 죽어 간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지 않고 살아서 부활의 영광을 맞이하여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시 몰리던 골고다를 넘어와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야 할 책임을 감당치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신랑이 굶고 통곡하는 자리에 있는데 신부가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습니까? 신랑이 하늘 앞에 무릎을 꿇고 속죄의 제물을 드리는데 신부가 편안히 먹고 잘 수 있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어떠한 입장에 있습니까? 어느 한 날 편안한 날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민족적인 기준에서 한이 맺혔기 때문에 민족적인 기준을 넘어갈 때까지 기독교 역사는 비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2이스라엘이 국가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여 세계적인 무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공생애를 출발할 때 3대 시험을 받아 승리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3대 시험에서 승리의 조건을 세워 놓고 나가야 됩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그렇듯 불쌍하셨던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시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이 슬퍼하신 것보다도 더 슬퍼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실 때는 4천년 역사의 한을 풀기 위해서였지만 예수가 왔다 간 이후 하나님에게는 4천년의 한에다가 예수가 죽은 이후 2천년의 한까지 플러스(+)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보다 더 슬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는 맨 처음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 다음에는 영계에 있는 천사들과 영계에 있는 조상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해방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편안한 자리에 계신 줄 알아요?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세상의 운세가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면서 '오 주님, 나 천국 보내 주소서'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불쌍하셨던 예수님을 해방시켜 드리기 위해서는 역사로부터 '불쌍하구나' 하는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역사의 선조들로부터 '너 하나만은 우리의 후손으로서 당당하구나. 전체 역사를 네가 일으켰구나, 하는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또한 거기에 더하여 '시대적인 사명과 민족적인 사명을 책임지고 아들의 사명과 부모의 사명, 효자와 충신의 사명을 다했구나' 하는 증거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