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집: 자랑스런 가정 1968년 03월 03일, 한국 대전교회 Page #67 Search Speeches

예수의 가정은 4천 년 -사의 -매로 나타나야

그렇기 때문에 예수 자신을 두고 보면, 예수 자신은 어떠한 역사과정을 거쳐왔느냐? 아담 해와서부터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복귀역사를 하늘은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 복귀역사라는 것은 장자가 차자가 되고 차자가 장자가 되는 역사예요. 다시 말하면, 이 모든 세상의 법도가 뒤집어졌으니 다시 뒤집는 역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건 왜 그러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천사장이라는 존재는 종이라는 거예요. 종이 주인의 자리에 들어왔기 때문에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뒤집어 박아야 된다는 겁니다. 이런 입장에서 사명을 감당해야 할 아담 해와의 두 아들된 가인과 아벨이 이것을 탕감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벨을 세워 가지고 가인을 탕감복귀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가인의 장자의 기업을 차자 되는 아벨이 빼앗아 가지고 가인을 완전히 굴복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완전히 굴복해야지, 불평불만하면서 굴복하면 탕감복귀가 안 된다는 거예요. 완전히 굴복했다는 그 기준, 영원히 그 앞에 굴복할 수 있는 이 심정적인 터전을 세우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되지 않는 다 이겁니다. 여기서 복귀하려고 하던 것이 거꿀잡이로 가인 앞에 아벨이 맞아 죽게 된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복귀의 운세는 야곱과 에서를 중심삼고 재탕감역사를 거듭하는 거예요.

아벨과 가인을 두고 보면 형제끼리 싸웠어요. 형제끼리 싸웠지만, 이 형제끼리의 복귀노정은 점점 어머니 뱃속에까지 찾아들어가는 복귀노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형제끼리의 탕감복귀역사를 하기 위해서 가인이 아벨을 굴복시키는 싸움을 하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이것을 계승하여 야곱을 중심삼고 에서를 굴복시키는 싸움을 하는 거예요.

야곱은 개인이로되 그 개인은 한 개인이 아니예요. 수많은 남성을 대표했어요. 또, 에서도 역시 수많은 남성을 대표하는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한편은 하늘편이요, 한편은 사탄편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늘편은 비로소 야곱 한 자체로써…. 야곱 혼자가 하늘편이요 그 이외의 수많은 남성은 에서편이기 때문에 사탄편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사탄편 대표자하고 하늘편 대표자를 세워 가지고, 여기에서 복귀의 탕감을 하기 위한 싸움을 전개시켜 야곱한테 에서가 비로소 굴복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의 남성이 하늘세계의 남성 앞에 굴복할 수 있는 처음 기대가 조성된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야곱이 에서를 중심삼고 승리했지만―이들은 쌍태의 형제예요. 쌍태로서 형제끼리 나와서, 어머니 뱃속에서 탄생해 가지고 20대의 청년시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야곱이 에서를 이겼습니다―그 이하의 기준에서는 아직까지 이기지 못했어요.

타락은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 하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시작했다 이거예요.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몸 가운데서 시작했기 때문에 복귀하는 데 있어서도, 장자복귀를 하는 데 있어서도 어머니 뱃속에서 복귀해야 되는 것이 복귀의 원칙이기 때문에 야곱이 복귀됐지만, 복귀된 야곱을 중심삼은 일족들은 이스라엘의 이름은 가졌지만 이것은 하늘의 직계가 될 수 없다 이거예요. 하늘 앞에 앞으로 올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양자의 입장, 다시 탕감이 필요한 입장이지 근본 탕감의 기준을 세우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떠한 입장의 이스라엘이냐? 하늘편 천사장의 후손과 같은 입장에서 복귀적인 승리를 마련했다 이겁니다.

그러면 그 이하, 복중에서 타락한 근본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어떻게 했느냐? 베레스와 세라―유다의 며느리인 다말이 자기 시아버지하고 관계하여 낳은 아들―를 중심삼아 가지고 비로소 다말의 복중에서, 태중에서부터 형제끼리 싸웠다 이거예요. 해산할 때 형이 먼저 나오되 손이 나왔어요. 이것이 형인데 이 형을 복중에서 물리치고 동생이 나온 거예요. 그때에 먼저 나온 손에다가 홍실로써 표시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보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끝날에 빨갱이가 한 때 나올 것을 보여 준 거예요. 주님이 올 때가 되면 반드시 이러한 사탄편을 대표한 형의 권한을 갖고 잠깐 동안 나타날 것을 보여 주는 거예요. 이것을 동생이 복중에서 밀쳐 버리고 나온 거예요. 밀치고 나왔다고 해서 베레스라는 이름을 붙인 거예요.

이 베레스를 중심삼아 가지고 복중에서부터, 태중에서부터 승리했다는 거예요. 태중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사람으로 볼 때에는 그 이상 복귀의 기준이 필요 없다는 거예요. 이러한 기반에서 베레스를 중심삼고 승리의 터전이 마련됐기 때문에 베레스의 혈족을 통해서, 베레스의 후손을 통해서 예수가 탄생하게 됐다 이거예요.

그러면 예수는 유다지파 족속으로 왜 2천 년 후에 탄생했느냐? 이 사탄세계는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 수많은 국가군을 이루고 있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탕감복귀하는 데 있어서 하늘편도 국가기준을 갖추지 않으면 탕감복귀할 수 없는 것이므로, 2천 년이라는 이 기나긴 세월을 거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서 이스라엘 나라를 만들어 가지고, 거기에 유대교를 세워 키워 나와 유대교를 중심삼은 국가적인 기준 위에 예수를 보내 가지고 수많은 국가를 대표한 복귀의 터전을 마련하려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를 보낸 목적이었다 이거예요.

그러면 예수하고 이스라엘 민족하고 하나돼 가지고 하나의 국가 체제가 반드시 승리의 기반을 닦아 가지고 수많은 국가들을…. 국가 중심삼은 아벨과 국가 중심삼은 가인, 여기에 있어서 외적인 가인권을 완전히 굴복시켰더라면 거기서부터 천국이념은 이루어질 것이었는데 예수님이 그런 자리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가정의 문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아무리 만왕의 왕으로 이 땅 위에 왔고, 하나님의 독생자로 이 땅 위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국가기준을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가정의 승리의 터전을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종족을 거느릴 수 있는 족장으로 설 수 없다 이거예요. 수많은 족장들은 가정을 중심삼은 족장이 돼 있고, 수많은 족속들도 가정을 중심삼고 이루어졌고, 국가 국민도 역시 가정을 중심삼고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정적인 기반 위에 하늘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지 않고는 그 민족을 지도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이 예수의 소원이기 때문에 그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수는 탕감의 노정, 다시 말하면 가정을 이루기 위한 탕감의 노정을 가야 된다 이겁니다. 이것은 아담가정으로부터 노아가정, 아브라함가정, 모세가정, 역대의 복귀노정에서 뜻을 대해 나왔던 수많은 선지선열의 가정들이 실패한 것을, 전부 다 종적으로 걸려 있는 것을, 예수 일대에서 전부 다 탕감복귀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예수의 가정을 두고 볼 때, 예수의 가정은 하나이지만 그 가운데는 아담가정도 들어가 있을 수 있고, 노아가정도 들어가 있을 수 있고, 아브라함가정 모세가정도 들어가 있을 수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들어가 있더라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승리의 가정이 돼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가정은 뭐냐 하면 4천 년 역사적인 열매, 가정의 열매로서 나타나야 된다 이거예요. 그런데 그러한 종적인 사연을 탕감할 수 있는 역사적인 환경을 그 당시에 유대 백성들이 제시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정이라는 그 표준이 자기가 이루어야 할 사명적인 분담으로 남겨져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이것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신랑 신부라는 말씀을 남겨 놓고, 신부 하나 찾기 위한 후대의 사명분야를 남기고 간 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길이요, 승천하신 길이었더라 이거예요.

이리하여 2천 년 동안 싸워 가지고, 다시 세계적인 이스라엘권을 만들어 끝날에 오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 가정적인 기준을 다시 인계해 가지고 상속하여 이것을 실체적으로 복귀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늘나라를 이룰 수 없고, 하늘이 소원하는 이상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늘이 소원하는 이상세계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이 지상의 인간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