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3집: 연합회장·교구장의 활동 방안 1991년 11월 07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44 Search Speeches

가정방문하려면 신문과 맥콜이 필"해

옛날에 교구에서 맥콜을 얼마씩 가지고 갔나? 문평래! 「제가 부산에 있을 때는 한 지역에서 한 달에 5백만 원 정도까지 팔면 많이 파는 편이었습니다」 전부 다 해서 5백만 원? 「예, 한 달에요」 5천만 원도 안 되구? 「교역에 있을 때, 맥콜차하고 주셨을 때 했습니다. 적게 판 적도 있고 많이 판 적도 있고 그렇습니다. 좀 열심히 하면 한 달에 5백만 원은 한 교역에서 판매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교역에서 5백만 원? 「예」 교역이 몇 개 교역이야? 「부산에만 10개 교역이 있습니다. 5천만 원을 판매하는 것입니다」 1억도 못 되는구만. 「그때는 잘 몰랐었습니다. 제대로 활동도 못 했고, 또 조금 열심히 해서 막 자리잡아 가다가 스톱을 한 데가 있었습니다.」

왜 스톱했나?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많았습니다」 너희들이 돈을 전부 다 떼어 먹으니까 그렇지…. 「그런 건 없었습니다. 가장 원천적으로는 저희들이 활동을 열심히 안 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격 조절문제라든지, 물품 공급문제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도 있었습니다. 덤핑 가격이 발생하기도 하고…」 요즘도 덤핑 물건이 나오나? 「그때는 그런 것이 좀 있었습니다」 요즘은 시중에도 물건이 없다고 그러던데…? 「예, 지금은 물건이 없어 가지고 맥콜을 사 먹기가 힘듭니다. 큰 상점에는 있습니다만, 골목길에 있는 소점포에는 맥콜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가정방문을 하려면 그런 물품이 필요해요. 신문이 필요하고…. 청량 음료수라도 가지고 매일같이 그 집을 드나들 수 있는 이런 것들이 필요한 거예요. 이제는 맥콜을 가지고 장사하는 거 싫어? 「이제는 종족적 메시아로 내려가 가지고 맥콜 장사도 해야 되고, 뭐든지 해야 될 입장입니다」 뭐든지 해야지, 그럼. 그것을 못 하게 되면 책임져야 된다구, 협회가.

엊그제 용인공장에서 무엇을 만들어 갔나? 우리 공장이 쉬니까, 딴 데서 무엇을 만들어 갔어? 「예, 제가 들은 바로는 지금 제주도에서도 칠성회사의 것을 만들어 주고 있다고 합니다. (홍성표)」

일본 사람들은 맥콜을 수입해 가지고 식구들이 다 분배해서 마셨어? 지금은 맥콜을 안 가지고 가지, 가미야마? 「예, 지금은 인삼 엑기스를 가지고 갑니다」 인삼 엑기스? 이제는 일본으로 맥콜을 가지고 가는 게 힘들겠어?

이제는 중점적으로 한곳 한곳을 쳐야 되겠어요. 단위적인 개척을 해야 돼요. 모델을 만들어 가지고 전체 식구들 앞에 하나 주고 하나 주고 …. 많은 지역을 하지 말고 한 지역씩을 책임져야 되겠다구요. 앞으로의 경제문제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차피 무엇을 해서라도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여러분의 생활 기반이 어려워질 것입니다.

홍사장은 맥콜이고 뭣이고 다 그만두면 좋겠구만? 여기 유종관이가 얘기해 보지. 맥콜공장을 다 그만두면 좋겠나? 「아버님, 사실 일화가 대중 속에 끼친 영향이 큽니다. 정직한 식품을 그 동안 개발하셨고, 또 인삼제품에 있어서 독보적인 권위를 지켜 왔던 일화인데, 일화 하면 역시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켰던 게 맥콜입니다. 아버님의 말씀대로 남북통일의 음료가 될 수 있도록 범통일교회적인 운동을 전개해서라도 살려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살려야 되겠다는 사람은 일어서 봐요! 다 일어섰구만. 앉으라구. 교구장부터 시작하지, 교구장부터. 교구장이 전부 다 판매를 시작해 가지고 하나하나 전수해 나가야 되겠어요. 시간이 많지 않아요. 운전은 다 할 줄 알지? 「예」

일화에 차 사 놓은 거 다 어떻게 되었나? 「다 못 쓰게 되었습니다」 4백 대나 사 주지 않았어? 「2백 대 샀습니다」 2백 대 샀나? 어차피 사회에서는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절대 기분으로 안 됩니다. 정말 발로 뛰어야 됩니다. (홍성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