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집: 전진과 정지와 후퇴 1976년 02월 2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91 Search Speeches

세상과 하나님이 가" 길은 반대돼

그것이 그럼으로 말미암아 올바른 가정의 성립이 이루어집니다. 그 다음엔 중요한 것이 뭐냐?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중요한 것입니다. 나라 앞에 있어서는 뭘해야 되느냐? 백성은 충신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천리가 요구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충신의 자식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구요. 그럴 게 아니예요? 그 나라의 충신은 그 나라의 복을 언제나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효자는 그 부모의 모든 복을 언제나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진정한 효자는 부모의 모든 것을 거리낌없이 상속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로 그 나라의 충신은 그 나라의 복을 이어받을 수 있다구요. 그렇지요? 그러므로 중요한 것을 빼 보면 효자 되는 길이요. 충신 되는 길이예요.

그다음엔 뭐냐? 세계를 초월해 가지고 이 우주를 창조한 어떠한 주인이 있다면,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효자가 되고 충신이 되는 길을 하나님도 바랄 것입니다. 바라겠어요, 안 바라겠어요? 내가 하나님이라도 바랄 거라구요. 거 틀림없이 바랄 거라구요.

그러면 도대체 성인이라는 그런 무리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자기 나라의 군왕을 위해서 충신이 되겠다는 사람이 아니요, 자기 가정에 있어서 부모 앞에 효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충신이 되고 하나님 앞에 효자가 되려니, 그 길에서는 인간 세계와 상충이 있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라구요.

어찌하여 인간 세계에 있어서 성인들이 간 길을 그 시대에 그 나라 백성들이, 그 나라의 가정들이, 그 나라의 주권자들이 환영을 못 했더냐? 이게 문제라구요. 왜 환영을 못 했더냐? 이것을 따지고 보면 누구나 다가야 할 길인데도 불구하고 환영 못 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세상과 하나님이 가는 길은 반대돼 있다 하는 결론을 우리는 찾을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의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시대의 주권자 앞에, 그 시대의 부모 앞에 비판을 받았다 이거예요. 그러면, 왜 비판을 받아야 되느냐? 그냥 그대로 세상 부모 앞에 효도하고 충성하고 그냥 그대로 하나님과 통하면 되지 않느냐?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순서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순서가. 이 우주에 근본적인 하나님이 있다면, 먼저 부모자리에 누가 서야 되느냐 하면, 여러분을 낳아준 부모가 부모의 자리에 설 것이 아니라, 먼저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부모의 자리에 서야 됩니다. 하나님이 부모의 조상이예요, 조상. 알겠어요? 그다음엔 군왕이 조상이예요. 일대 왕이라구요, 일대 왕. 여러분을 지금 낳아준 부모는 2차적이라구요.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와,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은 어디까지나 타락한 세계라구요, 타락한 세계. 하나님의 뜻과 공통적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적인 길을 가고 있다 이겁니다. 타락해 떨어졌다 이거예요. 잘못됐다 이거예요. 그런 모순 상충이 있는 것이요. 여기에는 비운의 결렬상이 가중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해 가지고 가정적 환경을 극복하고, 국가적 환경을 극복하여 넘어서는 데에 하나님의 본연의 도리의 길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생각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라는 것은 하늘이 지도한다면, 역사적 타락한 세계와는 반드시 상충과정을 거쳐 이 한계선을 넘고난 후에 비로소 지지할 수 있는 권내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종교역사든지 그 공식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 성립되는 거예요.

기독교도 그랬지요? 기독교도 그랬다구요. 어느 종교나 다…. 공자 같은 성인도 노나라에서 전부 다 이웃집 개라는 소문까지 났다구요. 불교도 마찬가지라구요. 지금 현재 여러분이 불교를 보게 된다면, 인도라든가 네팔 같은 지방에 가면 전부 다 불교 신자들이 아니라구요. 도리어 회회교 신자라든가, 힌두교 신자들이 많다는 거라구요. 그 나라에서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같은 양반도 보게 되면…. 지금 이스라엘 나라에 가보면 기독교인들이 15퍼센트도 안 된다구요. '예수 믿고…' 그게 아니라 구요. 그게 역사적인 비극이라면 비극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같은 양반이 말하지 않았어요? 성인은 자기 고향에서 대접 못 받는다고….

왜 그러냐? 그것은 하나님이 가는 길과 인간 사회와는 상충적인 입장 이기 때문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고장났기 때문에 고장난 그 차체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의 본연의 과정을 되돌아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 다. 그러려면 극복의 조건을 거쳐가야 하는 것이 종교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 있어서 편안하게 살기 위한 무리가 아닙니다. 이렇게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