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집: 참된 터전을 찾아서 1960년 09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56 Search Speeches

심판과 관계-" 입장- 있어야 하" 신앙자

인간은 동기로부터 결과까지 나아가는 과정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곡절을 거치며 흘러가는 역사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길을 가야 되느냐? 결과적인 방향을 찾아 나가든가 아니면 반대로 원인적인 방향을 찾아 나가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있습니다. 현실에 만족하다가는 망합니다. 목적의 세계를 찾아 나가든가 아니면 원인의 세계를 찾아 들어가든가 둘 중의 한 방향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것입니다.

여기서 원인적인 세계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 철학과 종교요, 결과적인 세계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 자연과학입니다. 이 두 갈래 길 중 어느 방면에서 목적의식을 느낄 수 있으며, 절대자의 존재를 의식할 수 있으며, 절대자의 불변의 발판으로 섰노라고 자랑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타락한 인간 앞에 제시된 불변의 명제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 자신들을 되돌아볼 때 과연 우리는 어떠한 위치에 처해 있느뇨? 내 자신은 어떠한 위치에 있느뇨? 아무리 과정의 생활을 즐긴들 목적과 관계가 없다면 이는 하등의 의미가 없습니다. 지난날의 생활이 목적과 관계가 없다 할진대 그 과정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고충이 많으면 많을수록 목적의 때에 이르러서는 고통밖에 되지 않습니다. 주저의 조건, 갈 길을 가로막는 조건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아시기에 인생 행로를 가는 데 있어서 단순하게, 철저하게 한가지만 알고 나오라고 주장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라는 것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을 `믿어라!'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믿으라고 하면서 인간을 이끌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고 사람들의 지능이 발달됨에 따라 그것은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모든 현상을 볼 때에도 아무런 내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세기말적인 끝날에는 신앙자들이 세파에 몰리지 않을 수 없고,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낙망하지 마십시오. 과정적인 노정은 반드시 지나갈 것이거늘 지나가는 과정에서 비판받는다고 낙망하지 말자는 겁니다. 지나가는 역사를 밟고 넘어갈 수 있는 신념을 가지십시오. 어차피 지나갈 이 복잡한 환경을, 이 과정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신앙만 가지라는 겁니다. 어느 누가 뭐라고 해도 변치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 나가면 됩니다.

하나님을 무조건 믿는 것도 좋습니다. 무조건 믿는 데는 알파와 오메가적인 하나님, 처음과 나중인 하나님이라고 결정해 놓고 믿어야 합니다. 이는 역사적인 과정을 초월한 신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맹목적인 신앙관을 세우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신앙이라는 두 글자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불변의 발판 위에 서게 한다면 복잡하게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앙을 세우셨다 할진대, 그 본연의 심정에 일치하는 신앙관념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신앙자가 있느냐? 없습니다.

아무리 끝날이 오고, 말세에 심판이 있다 하더라도 그 심판은 나와 관계 없다고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늘날 이 땅 위에 벌어지는 모든 죄, 혹은 죄상과 연관된 만사는 나와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러나 어디 그래요? 회개하고는 또 죄 짓고 또 회개하고 그럽니다. 죄와 관계없다고 하는 신앙을 찾아볼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조의 시대가 왔으니 이러한 동기로부터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러한 목적의 세계로 간다' 하는 것을 해명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아무리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다 할지라도 이것을 못하는 날에는 반드시 깨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종교인들은 그들이 처해 있는 위치에서 모든 것을 해결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각도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까지의 남아진 과정이 짧으면 짧을수록 한꺼번에 몰아치는 사조를 밟고 넘어갈 수 있는 믿음을 갖든가 그것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내용을 갖든가 둘 중의 하나를 갖추지 않으면 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