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집: 참된 영광의 길 1972년 11월 0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25 Search Speeches

"신인(神人)이 일체"한 인생관, 세계관, 심정관을 가져야"

세기말적인 세계 정세를 앞에 놓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내가 가야할 필생의 운명길이 어디냐 할 때,‘나 모른다'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무지에는 완성이 없는 것입니다. 무지는 파탄입니다. 그것은 항로를 모르고 대양을 달리는 배와 마찬가지입니다. 표면에 나타난 물결은 마찬가지라고 가는 대로 가다가는 파탄되게 마련입니다. 키를 잡아 가지고 항로를 가려 가면서 전진하는 데 있어서 그 전진하는 것만 보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항로를 바로 보고 항구가 가까와지는 것을 보고 기뻐해야 정상적인 선장이 아니냐. 현재 잘 움직인다고 해서 그걸 좋아하다간 망하는 것입니다.

세계여, 그런 운명에 서지 않았느냐. 대한민국이여, 그런 운명에 서지 않았느냐. 내가 그런 운명에 서지 않았느냐. 이 입장이 우리의 인생길인 것을 생각할 때, 인생길은 그야말로 비참한 길이요, 그야말로 고해라는 옛날 우리 조상들이 남긴 말은 타당한 말이 아니었더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을 붙들어야 되겠습니다. 오른손으로 하늘을 붙들어야 되겠다 이겁니다. 하늘을 붙들고 올라가는 데 있어서는 순식간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육천년 동안 떨어진 이 구렁텅이를 올라가려면 혼자의 힘 가지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난한 자리에서 올라가기 위해서는 ‘하늘이여, 원하거든 이 땅이 솟구쳐 가지고 이 대양을 뚫고 나올 수 있는 터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다시 말하면‘이 세상이 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도 바라는 소원이요, 구원받기를 원하는 인류의 소원이기 때문에 인류 앞에는 반드시 끝날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끝날은 뭐냐 하면 수평선상에 하나의 섬이 나타나는 때일 것입니다. 섬이 이 세계에 나타나는 그 때가 끝날일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적이 아니라 특수한 사람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때일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는 하늘을 대표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처음 찾아올 것이요, 또 땅을 대표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처음 찾아올 것입니다. 그 자리가 뭐냐? 성경에서 말한 대로, 하늘을 대표한 남자는 신랑이요. 땅을 대표한 여자는 신부이기 때문에 그러한 신랑과 신부가 상봉하는 자리가 아닐 것이냐 할 때, 그거 참 그럴 듯한 결론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간 후에 하늘로 올라갔고, 선신은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땅에 온 성신의 목적이 비로소 종착점을 결하는 것이요, 올라갔던 그분이 올라가 이루어 가지고 올 수 있는 상봉의 순간이 재림의 순간이 아니겠느냐? 그것이 재림사상이 아니냐? 메시아가 땅 위에 현현하는 때가 그 목적점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볼 때, 그것은 틀림없는 결론입니다.

그러면, 최후에 남아질 것은 뭐냐? 인간들이 구상했던 철학도 아니요, 그 어떤 인생관도 아닙니다. 하나님 플러스 인간, 신인(神人), 신인(神人) 삶의 길, 신인 생활관입니다. 인생관도 마찬가지로 신인 인생관, 신인 세계관, 그것이 통일된…. 그것이 막연하게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 사람이 알 수 있는 정도의 자리가 아니라 사람이 영원히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자리입니다. 왜? 하나님과 사람은 본래 떨어질 수 없는 자리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그 떨어질 수 없었던 자리 이상의 자리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신인(神人)이 하나된 생활적인 무대, 세계적인 무대를 요구하고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신학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신학의 종착점은 어디냐? 인간의 지성,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학적인 기반을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이것이 내적인 면에서 일치점을 가지고 인간의 지식을 포괄할 수 있는 신학의 결론성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최고의 지혜가 무엇이냐 할 때에, 하나님도 인격적 신이라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소망이 있음과 동시에 사정이 있을 것이고, 심정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도 제일 중요한 문제 세 가지를 뽑는다면 소망과 사정과 심정이 아니냐. 그렇지 않아요?‘아! 그 사람은 사정이 나와 같아’그러면 통하지요?‘아! 나와 심정이 같다’그렇게 되면 거기서부터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아! 그것이 내가 바라던 바야’거기서부터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망과 사정과 심정, 이것은 인격을 가진 인간과 하나님과의 공통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사정을 넘어서 신의 사정과 일치되어야 되고, 인간의 심정을 넘어서 신의 심정을 가지고 일치되어야 되고 인간의 소원을 넘어서 신의 소원과 일치되어야 됩니다. 그러한 대표적인 인물로 이 땅에 왔다 갔던 분이 그리스도가 아니냐. 안 그래요? 그래서 예수님은‘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했던 것입니다. 달랐다구요.‘제 사정은 비참하지만 당신의 사정대로 하시옵소서, 제 심정은 비참한 길을 가기 싫지만, 당신이 원하는 심정은 세계를 사랑하기 위한 심정이기 때문에 나 하나를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위해서 사랑하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 는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인(神人)이 일체화한 인생관과 세계관과 심정관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생활은 사정을 통할 수 있는 것이요, 생애는 소망을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이요. 심정은 비로소 소망과 생활이 하나된 본보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진대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무엇이냐? 소망을 상징하는 것이요, 소망은 무엇이냐? 갈 길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소망을 중심삼고 뜻을 중심삼고 사는 것이요, 그것은 사정이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일치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냐. 그래서 모든 것은 다 지나가더라도 그 중에 제일인 사랑은 남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에 인류세계가 바라는 희망의 세계는 지식의 세계도 아니요, 인격의 세계도 아니라 사랑의 세계인 것입니다. 이상의 세계도 아니요, 인격의 세계도 아니요, 사랑의 세계입니다.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인(神人)을 중심삼은 심정적 세계가 일치된 세계는 하늘이자 땅이요, 땅이자 하늘이요, 위가 아래가 돼도 좋고, 아래가 위가 돼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되지 않고 위가 아래가 되면 큰일난다구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으로 하나 안 되어 가지고 어머니가 위로 올라가겠다고 하면 아버지가 야단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