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집: 정도 1982년 10월 24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00 Search Speeches

하나님은 사'을 '준으로 정하고 나온다

본래 인간은 누구하고 사랑하게 되어 있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왜 지었느냐 이거예요. 전지전능한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사람을 지었어요? 기독교식으로 그저 지었다고 하면 쉽지요. 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안 통해요. 하나님이 무엇이 필요해요? 하나님이 돈이 필요하고, 금덩이가 필요하고, 다이아몬드가 필요해요? 필요해요, 안 필요해요? 「필요 없습니다」 그런 것은 얼마든지 없다? 「있습니다」알기는 아는구만, 또 하나님이 지식이 필요해요, 필요 없어요? 「필요 없습니다」 지식의 왕인데 말이예요. 그 지식은 얼마든지 없다? 「있습니다」 그래요. 그다음에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에게 권력이 필요 있다, 없다? 어떤 거예요? 「필요 없습니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예요. 그런 것은 '있다'고 해도 되고, '없다'고 해도 돼요, 그 말이 그말이예요.

그러면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생명도 필요 없어요. 생명의 주체이신데 그런 것이 왜 필요해요? 그러면 무엇이 필요하냐? 뭐예요? 「사랑」 사랑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왜 하나님에게 사랑이 필요해요?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적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이예요. 이론적 타진에 의해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필요로 하는 하나님이 안 되어 가지고는 이 창조세계와 인간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가지고 찾아오지 않고는 존재세계와 상관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을 표준으로 정하고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정면적 사랑이예요. 정면으로 찾아오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 가지고 마음, 양심줄과 더불어 곧게 찾아올 수 있는 그 길은 둘이 아니예요.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양심이 곧다고 하지요? 「예」 무엇으로 양심이 곧다고 해요? 그거 문제라구요. 양심을 봤어요? 무엇 갖고 양심이 곧다고 해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곧아야 된다는 것은 알아요. 그렇지요?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무엇을 중심삼고? 양심을 중심삼고 아는 게 아니예요. 그것을 알아야 돼요. 무엇을 중심삼고? 힘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예요. 지식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예요. 실력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것은 바른 사랑을 중심삼고 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다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심 중심삼고 바른 그 양심에 일치될 수 있는 바른 양심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도 양심을 거기에 또 요구하는 거예요. '너 하나님 양심을 보고 살래, 무엇을 보고 살래?' 하게 되면 그 양심 보고 살지 않겠다는 거예요. 암만 바른 양심이라도 그 가운데 사랑이 있으면 그 사랑을 보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양심이 그런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바른 양심도 원하지만 그 바른 양심이 되게 하는 사랑을 더 필요로 한다 이거예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우리 양심이 발라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에 하나되려면 몸이 발라야 되고 마음이 발라야 돼요. 마음이 바르지 않고는 바른 사랑의 길이란 있을 수 없어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지식도 초월해야 됩니다. 사랑하고 지식하고 바꿀 수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그래요? 박사님들, 윤박사, 사랑하고 지식하고 바꿀래요? 웃는구만! 권력하고 사랑하고 바꾸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돈하고 사랑하고 바꾸겠어요? 어떤 것을 주더라도 안 바꾼다 할 수 있는 정의의 입장을 견고화시킬 수 있는 그 자체가 무엇이냐? 그 자체가 뭐냐? 그것은 하나님도 아니예요. 사랑,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영원한 사랑, 유일 불변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왜 필요하냐? 사랑은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중앙이 된다는 거예요. 힘의 모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좋다고 하는 모든 명사의 내용을 충당시키고 남을 수 있는 근원지가 사랑의 바탕이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