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집: 하나님의 슬픔을 아는 자가 되자 1957년 10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74 Search Speeches

예수가 전하려던 하나님의 사정

이와 같은 슬픈 사정에 처해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핍박하고 불신하는 유대교와 이스라엘민족을 당장에 심판하여 멸하고 싶었지만, 멸하시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애달픈 서러움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만민의 구세주로 오시어 서러워하신 것은 전인류의 서러움을 대신하였고, 모든 피조물의 서러움을 대신하였기 때문임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의 외로운 가슴을 헤치고 그의 서러움이 어떠한가를 느끼려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남 모르는 애달픈 입장에 처해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과 한날의 친구는 못 될지언정, 한 시간의 친구라도 되겠다는 마음을 지녀야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그러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없다면, 여러분은 천륜을 대신하여 나설 수 없고,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슬픔을 위로할 수 없게 될 것이며, 오히려 하늘 앞에 반기를 드는 반역자의 입장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애달픈 심정을 갖고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무한히 애썼지만, 결국에는 십자가에 달리게 되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시던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느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만민을 대신하여 온 우주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여 사탄을 굴복시켜야 할 사명이 있었지만, 불신하는 무리에게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려 결국에는 골고다산상에서 십자가까지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자신을 중심하고 약속되었던 모든 뜻이 파괴되어버리고 자신의 일생이 결국은 십자가의 형틀에 귀결된다는 것을 느낀 예수님이었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끝까지 하늘을 배반하지 않고 하늘 대한 충성의 도리를 다하셨습니다. 모든 인간들이 예수님을 불신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것에 상관하지 않고 천륜을 향한 그 길을 일생의 목표로 삼아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일생이 우리 인간에게 역사적으로 소망의 길이 되었음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 직전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6:46)"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예수님의 입장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안타깝고 서글펐던 심정을 여러분은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4000년 동안 서러움을 참으신 하나님이시지만, 사랑하는 아들딸이 어떠한 탕감조건을 세우기 전에는 직접 주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탕감 조건을 세울 때까지 참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서 어떻게 사셨던가. 오늘날 여러분과 같이 마음대로 말을 하고 마음대로 행동했느냐 하면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안일한 입장에 서시지 못했습니다. 어디에서 자든 무엇을 먹든 상하좌우 어디로 움직이든지 간에 항상 뼛골에 사무치는 하나님의 서러움 심정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곳에서 말씀을 하든지 간에 불신하는 무리로부터 자신의 뼈가 녹아지고 피와 살이 사그라지는 듯한 서러움을 느끼면서 당시 바리새교인과 유대교인·이스라엘민족 앞에 소리높이 외쳤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로부터 당한 여러가지 서러움에 사무치는 원한의 심정을 놓고 무지한 백성과 불신의 무리를 대하여 의논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사정이 예수님에게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늘로부터 어떠한 사명을 받고 이땅에 오게 되었는지를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소망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너무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서러운 마음이 북받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슬픔이 하늘 땅을 덮고도 남을 수 있지만 자신의 사정으로 인한 슬픔은 지닐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그와 같이 자신의 사정에 얽매이지 않고 전체 인류의 슬픔과 역사적인 하나님의 슬픔을 염려하며 위로하려 했던 예수님의 30평생의 삶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 자신이 예수님의 그 슬픈 사정을 얼마나 염려해 보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러한 슬픔의 자리까지 얼마만큼 나아가 보았는가를 반성해 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