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집: 같이 살아야 할 인간과 하나님 1959년 01월 1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50 Search Speeches

"실체신앙 시대, 부활신앙 시대"

베드로는 12사도 중에서 예수의 말씀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입장에 있었으나, 예수를 자신의 마음에 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리에는 못 나갔습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의 실체를 붙들 수없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를 붙들려 했으나 붙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이렇게 실체를 붙들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럴 수밖에 없게 된 것이 우리 인간의 제2차적인 비극입니다.

1차의 비극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잃어버린 것이요, 2차는 예수를 잃어버린 것, 말씀의 완성실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다시 오셔야 됩니다. 이것이 알고 보면 한없이 울어야 할 일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슬프다면 이 이상 슬픈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늘은 해원의 날을 바라시고 4천년 동안 눈물의 고개, 슬픔의 고개, 복통할 수밖에 없는 고개를 거쳐 나오셨습니다. 이러한 고개를 넘으시면서 소망의 실체로 예수 한분을 이 땅에 세우셨는데 그만 이스라엘민족은 그 예수를 죽음의 자리로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이스라엘민족 앞에 하나님의 생명을 대신하고 약속한 이념을 대신한 메시아로 보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민족으로 하여금 메시아의 뒤를 따르고 메시아를 모실 수 있는 준비를 하라 하셨는데, 메시아로 오신 예수를 붙들고 울어야 할 민족이요, 통곡하여야 할 이스라엘은 어디 갔는고? 아담을 잃어버린 그날부터 4천년 동안 하나님을 모시던 이스라엘민족은 어디 갔는고? 사탄의 제물이 된 것입니다. 이 이스라엘민족은 하늘의 역적이 되었습니다. 역적!

오늘날 믿는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러 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강림목적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십자가의 도리를 믿을 것이 아니라 부활의 도리를 믿어야 됩니다. 십자가는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의 몸을 유린한 죄의 조건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임을 알아야 돼요. 이 십자가를 넘어서 부활하신 후 40일을 지난 뒤 이루어진 성신강림과 더불어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것이 기독교의 정통적인 신앙입니다. 이것이 바른 기독교의 신앙이예요.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죽으러 왔다고 합니다. 만약 죽으러 올 것 같으면 4천년 동안 이스라엘민족이 안 믿으면 들이치고, 애급에서 고역당하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끌어내었겠습니까? 또 바빌론에 포로가 되었을 때에도 선지자를 세워 간곡히 권고하였겠습니까? 4천년 동안의 역사가 예수를 잡아 죽이기 위한 역사입니까?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이 세계에 널려 있습니다. 이들이 하늘을 저버리고 하늘을 배반한 이스라엘민족과 같은 제2이스라엘민족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 심각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한 실체로서 하늘나라의 말씀을 해주셔야 했습니다. 그 말씀은 사탄이 시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믿고 나서는 사람에게는 사탄이 시험을 못합니다.

오늘날 땅 위의 예수를 믿는 성도들 가운데 시험받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누구나 시험받아야 해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사탄이 억천만 번 시험을 하고자 해도 시험할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사탄에게 침범받으면서 남겨놓고 가신 말씀을 가지고 믿고 나가고 있으니 그 성도들에게 사탄이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체를 갖추어서 사탄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시대는 어느 때에나 올 것인고? 그때가 재림의 날입니다.

내 몸에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말씀의 씨앗을 심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둬들여야 하겠고, 내 몸에 말씀을 통한 실체를 심어서 하나님의 실체로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쁨에 겨워 품으시고 사랑하실 수 있는, 영과 육이 하나된 완성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존재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최후의 신랑 신부가 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끝날인 오늘날에는 성신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들 가운데서 이 성신이 백퍼센트 역사할 수 있게 재촉할 수 있는 성도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성신이 오늘날 우리를 위해 역사하는 그 이념의 기준은 무엇인가? 성신을 앞에 세워 놓고 물어봐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끝날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