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집: 불쌍하셨던 예수님 1964년 05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62 Search Speeches

예수님은 왜 재림해야 하나

하나님의 복귀역사의 목적은 전세계를 탕감복귀하는 것입니다. 영육 안팎으로 완전복귀하기 위해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셨고, 그것을 완결 짓는 것이 예수가 왔던 바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가신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께 복을 달라고요? 가진 복을 빼앗기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예수님은 복을 줄 수 없습니다. 세계 앞에 복을 줄 수 없어요. 예수님이 기도를 하여 하나님의 역사로 복을 준다면 모를까? 예수님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거기에 동참시켜서 성과를 거두게 되면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축복의 기반은 닦아 나올 수 있지만, 그 민족이 축복받는 민족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축복받은 사도들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도요, 수제자요, 세 제자라 해도 그들은 신부의 자리에 나가지 못하였습니다. 사도는 종입니다. 신부의 자리에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귀의 한을 남기고 간 연고로 예수님은 하늘 앞에, 이스라엘 앞에 역사적으로 책임 못한 모든 것을 다시 수습해 나오면서 한 백성이 고통을 당하고 한 가정이 고통을 받으면 대신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대신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천년 동안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불쌍하신 분입니다. 역사이래 제일 불쌍한 사람이 누구냐? 바로 예수님입니다.

천만 가지 고통과 비통한 사연을 예수님과 인연맺어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땅 위의 모든 성도들은 고통을 받게 될 때에 반드시 하나님 앞에 기도의 조건을 세워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소원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죽은 시체를 수습하여 실패하기 전의 입장에서 세계적인 이스라엘을 복귀하기 위해 출발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전부 깨져 버렸기 때문에, 영육이 아닌, 영적으로만 개인을 수습하고, 가정을 수습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수습해야 했던 것입니다.

4천년 준비하여 메시아를 맞았던 그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은 영육 아울러 메시아를 모실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죄악에서 해방을 받아 지상에서 죄 없는 아들딸들을 번식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영적으로만 이루어 놓았으니 오늘날 우리에게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종교생활이 무엇입니까? 육신을 치는 생활입니다. 먹고 싶은것 먹지 않고 금식하고 몸을 치는 것입니다. 몸을 사탄으로부터 갈라놓는 것입니다. 이 싸움이 얼마나 치열합니까? 이 모든 것은 예수를 죽였기 때문에 벌어진 것입니다. 신랑을 맞이하는 날은 잔칫날인데 잔칫날엔 그냥 먹고 노는 것입니다. 슬프게 살기 위해서 신랑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러한 신랑을 죽였으니 슬프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사명으로 보아 불쌍하신 분이고, 시대적인 한을 품고 갔으니 불쌍하신 분입니다. 그는 또 역사적인 사명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갔으니 불쌍하신 분입니다. 아직까지도 그는 한스러운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영육 아울러 주님을 상봉할 수 있는 세계적인 이스라엘 민족의 터전이 아직까지 지상에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땅은 평면적으로 보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라져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시대적인 환경은 종교의 자유를 주고 또 국가적으로 국교화를 실시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낙원세계와 맞먹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적인 외적 기준이 영적인 기반에 화할 수 있는 세계적인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적인 기준에 화할 수 있는 세계적인 이스라엘권을 다시 세우고 세계적인 유대 교회를 세워, 오실 주님이 만민을 상봉할 수 있는 환경적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의 주권국가를 중심 삼고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의 입장에서 영육 아울러 통치의 기반을 세워야 합니다. 이러한 목적이 세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날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의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