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4집: 섭리적 종착점에서 1987년 05월 03일, 한국 본부교회 Page #29 Search Speeches

인간만이 하나님의 사'의 상대가 될 수 있어

그 욕심은 누구를 닮았어요? 그 욕심이 누구를 닮았어요?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당신네 엄마 아빠 닮았지 뭐. 그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엄마 아빠 계속 찾아 올라가면 아담 해와 닮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닮았다는 거예요.

그래 하나님은 욕심꾸러기 하나님이예요. 욕심꾸러기 하나님은 편안히 코를 골고, 무사태평…. 무사한 것이 태평이 아니라 만사태평(萬事太平)이예요. 무사태평(無事太平)이라고 하면 안 돼요. 하나님의 이상을 알면 만사태평하다는 거예요. 세상이 아무리 첩첩 다 가리고, 아무리 모진 어려운 것이 있더라도 사랑의 보자기만 씌우면 모든 것이 거기에서 우글우글 싸우지 않고 전부 다 갈래를 잡아 가지고 쭉 행렬을 지어서 따라간다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멋져요? 멋지지요? 「예」 나도 말하기가 참 멋지구만. (웃음)

자, 힘든데 그렇게 얘기해야지, 뭐 딱딱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어요? 이제 알 만해요?

욕심이 크지요? 응? 욕심은 대우주를 마음 보따리에 갖다 넣었어도 더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까지 갖다 넣으려고 한다구요. 그렇다구요. 그게 누구를 닮았다구요? 「하나님」 그러면 그 하나님의 욕심 보따리는 무엇으로 채우겠어요? 물로 채우겠어요? 뭘로 채우겠어요? 「사랑」 사랑의 김이라도 채워 넣어야 된다구요, 사랑의 김이라도.

그러면 하나님은 사랑을 어디에서 찾아요? 문선생은 사랑을 어디에서 찾아요? '나 혼자 찾지. 아이구, 내 사랑이야. 내 사랑이다' 그래요, 혼자? 이게 내 사랑이예요? 뭐라도 손에 붙들고 이렇게 보면서 '아이구 내 사랑이야, 아이구, 내 사랑이야' 하고, 춤을 출 때에도 무엇이라도 하나 붙들고 춤을 추면 누가 미쳤다고 그래요?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눈을 부릅뜨고 한곳에 버티고 있으면 미쳤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대상에게는 상대적 기준을 대등한 가치권으로 올리는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요? 못 알아듣겠으면 꺼져, 꺼져. (웃음) 내가 그걸 그렇게 많이 가르쳐 주었는데 그걸 또 어떻게 처음부터 시작하겠나? 그런 사람은 여기 오는 게 아니라구요.

하나님의 욕심 보따리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참사랑만 갖다 틀면 푸- 그 욕심 보따리가 터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맥을 놓았다 하면 터져 나간다는 거예요. 그럴 때 하나님이 힘을 줘서 '스톱-' 해야 터지려고 했다가도 쑥 돌아 들어가는 거예요. 숨을 들이쉬어도 터질 것 같고, 내쉬어도 터질 것 같아요. 들이마시는 맛하고 내쉬는 맛하고 달라요? 「예」 달라야 할 텐데 마찬가지예요. 죽을 성싶은 것은 마찬가지라구요. 맛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경계선이 되어 있기 때문에…. 진폭이 딱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욕심을 채워 줄 수 있는 것이 뭐라구요? 「사랑 보따리」 사랑뿐이 예요, 사랑. 보따리는 또 무슨 보따리인가. (웃음) 사랑을 찾아야, 사랑이 많아져야 보따리가 생기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혼자 사랑할 수 없어요.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 관계가 없을 때에는 이루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은 우주에 다른 것이 없다는 거예요. 아무리 찾아봐도 인간밖에 없다는 거예요. 인간밖에 없다는 거예요.

아무리 훌륭한 남자라도, 아무리 시골뜨기 여자라도 사랑 관계를 맺으면 '야, 이놈의 남자야! 나를 버려?' 할 때는 꼼짝없이 걸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너 이놈의 자식 어디 가서 사나 봐라 이거예요. 몽땅 걸려 들어간다구요. 사랑에 동참하게 되면 동위권(同位圈)에 서는 거예요. 같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우리가 사랑의 대상이 돼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런 사랑을 중심삼고 비로소 영생의 논리가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니, 사랑을 중심삼고 내가 절대적 상대의 자리에서 절대자를 움직였으니 그 절대자가 나와 하나될 수 있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는 영생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높다 하지만 그 하나님의 옆에 재까닥 가서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해서 뭘해요? 구해서 뭘하겠다는 거예요? 요사스러운 짓 다하고 다하고 다하고…. 이 거지 패들을 전부 다 모아 영계에 데려다가 무엇에 쓰겠어요? 쓰레기통에도 못 집어넣고…. 쓰레기를 개조해 가지고, 다시 정제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의 자리에 세우려고 하는 본래의 마음, 한번 정한 그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변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자리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것이 구원역사입니다. 구원이라는 뜻이 그래요. 병이 난 것을 병원에 데리고 가서 병이 나기 전의 자리로 갖다 놓으면 구원이 됐다고 그러잖아요? 그런 걸 알아야 된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