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집: 참부모와 우리들 1972년 05월 07일, 일본 동경교회 Page #134 Search Speeches

가인 아벨의 문제

가인 아벨의 문제가 걸려 있다. 가인은 아벨을 친 자이다. 보다 선한 입장에 선, 보다 하나님편에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 반대를 해온 자는 언제나 가인의 입장이다. 이와 같은 관계는 타락 이후 오늘까지 역사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여러분도 그와 같은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들 자신의 하루의 생활에 있어서도 언제나 자신을 중심으로 하고 보면 가인적이든가 아벨적이든가 그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또, 한 시간에 있어서도 그러한 관계에 있다. 전후관계, 좌우관계, 상하 관계에 있어서 모두 선악을 중심삼고 보면, 한쪽은 하나님에게 기울어져 있고, 한쪽은 반대쪽에 기울어져 있다. 이것이 우리들 일체의 생활과 연결되어 있다.

한마디의 말을 중심삼고 보아도 그것은 가인 아니면 아벨의 입장이 된다. 어제의 기준에서 볼 때, 오늘 말하는 자신의 입장이 달라졌는데 어제보다 좋으면 아벨의 입장에 선 것이요, 나쁘면 가인의 입장에 선 것이다.

일체가 그와 같은 관계에 있다. 이런 인연을 맺어서 하나님은 보다 아벨편을 향하게 하려 하고, 사탄은 그 반대편으로 끌어가려고 하고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아벨쪽에 보다 다가서서 높이 올라가면 기쁨이 있다. 이것은 기쁘다. 기쁨이 온다. 그 반면에 사탄편인 가인의 방향에 끌려간다고 하면 이유없이 슬픔을 느낀다. 그래서 기쁨과 슬픔의 교차점을 만들어 온 것이 우리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온 길이다. 우리의 매일의 생활을 볼 경우에는 자신에게 손해되는 때는 슬픔을 느끼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때에는 기쁨을 느낀다. 슬픔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는 것은 결국 가인 아벨의 문제를 중심으로 해서 이것이 엇갈리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선한 입장에 서면 일보 전진하고 하나님쪽에 가깝게 된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세계가 해방된다. 아벨의 입장에 선 사람은 지금까지의 입장보다 전진하고 싶은 것이 소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반하여 후퇴할 경우에는 거기에 비례한 슬픔이 자연히 생긴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에게 도달하는 것이다. 그런 기준을 중심으로 우리들은 기쁨을 느끼고 슬픔을 느낀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우리들 인간은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통해서 사회를 연결하고, 국가를 연결해 세계에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인간이 아무리 사회인이라 해도, 개인을 연결한 것이 사회이고, 국가이고, 세계이므로 결국 이와 같은 인간들을 해방하는 데는 개인을 해방하는 운동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정의 해방의 동기도 개인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