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6집: 습관성을 버려라 1997년 07월 23일, 미국 이스트가든 Page #53 Search Speeches

하늘땅, 과거·현재·미래의 감동권을 움직-야

통일교인들이 이제 설교문을 써서 그것을 읽은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선포해야 됩니다. 마음과 몸이 생사지권으로서 가는 데마다 선포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가 몸과 마음을 다 해서 하늘땅을 감동시키고, 청중을 감동시키고, 과거·현재·미래의 감동권을 움직일 수 있는 동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동기 없게 될 때는 대중화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점점점점 세속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을 대신해서 해야 됩니다. 그러니 주일 말씀은 책보고 연구해서는 안 됩니다. 깊은 기도 가운데서 제목을 알아야 되고, 그 제목을 잡기 위한 기도, 생명의 감동을 받고 그 자리에서 자기가 최후의 선언, 나라가 망하고 흥하는 모든 문제를 걸고 선언하는 마음이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형장에 나서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이뤄지느냐 안 이뤄지느냐 하는 그런 경계선에서 선포해야 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수대에 나가는 사형수같이 심각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노래하는 가사나 음성은 다 같은 노래지만 감동을 준다는 것은 모든 내용을 알아야 된다구요. 성대에서 나오는 말이 깊은 내용을 가지고 그것이 공명돼야 됩니다. 공명, 산울림처럼 갔다가 와서 자기 가슴을 밀쳐 가지고 내가 감동 받아서 자세를 옮길 수 있는 그 자리에 어떻게 들어가느냐 이거예요. 그와 같은 노래를 해야 대중에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연설문을 중심삼고 내가 내일 연설하면 하루 종일 그 시간에, 어느 시간에 이것이 감동될 수 있는 내용으로 내게 느껴지느냐를 찾아야 됩니다. 그 시간을 맞춰 가지고 찾으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이런 감동을 받으면서 하늘과 내가 하나돼야만 그것이 전체 청중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생명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보통 라디오 같은 것을 통해서 전달되는 뉴스를 보게 될 때는 생명의 부활이 없어요. 생명이 있으면 거듭나야 됩니다.

이것을 계속하면, 대회 같이 계속하기 때문에 연설하는 사람들이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심각하지만 전처럼 다 했고, 다 성공했다고 하면 그것은 흘러가는 것입니다. 뜬다구요. 그런 원고를 읽게 되면 거기에 자기가 첨부할 수 있는 말이 하나 둘 몇 가지가 많다는 거예요. 느끼면서 얘기를 해야 된다구요. 그러니 많이 읽어야 돼요. 많이 읽으면 거기에 무엇이, 그것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전하고 싶은 것이 시간이 없어 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갖고 자기가 마음으로 느낀 것을 말씀과 더불어 엮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밥을 짓는데 보통 사람이 짓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부모님이 지은 밥이 더 맛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뭐가 있다구요. 그건 밥을 지으면서 밥을 생각하기보다는 상대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를 생각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밥이 맛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