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집: 예수님의 한 1968년 01월 1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45 Search Speeches

예수님의 한을 '어 "리려면

오늘 우리들이 소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창조목적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 소원을 대신한 실체로 예수님이 오셨으나 예수님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실 때 '나는 너희 앞에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는 명제만을 남겨 놓고 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압니까?

기독교에서 말하는 어린양 잔치는 무엇이냐? 하나님이 찾아 세워야 할 참부모의 모습을 끝날에 세워 가지고 형제의 인연과 자녀의 인연을 갖추어 인류역사를 바꾸어 놓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안고 있는 숨가쁜 소망이요, 2천년 동안 고생해 나오셨던 하나님의 소망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무엇을 붙들고 있습니까? 2천년 전의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붙들 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유대교단은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시대적인 혜택권내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택함받은 이스라엘 백성 전부는 예수를 만민의 왕으로 모실 수 있는 시대적인 환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자처하면서 예수를 배반했고 배척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 인해 예수가 소망하던 모든 것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유대 나라 역사가 끊어졌고, 유대 나라를 통하여 나오던 이스라엘 백성도 끊어졌고, 모든 것이 다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어서 한스러운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울고불고 하며 살아가야 할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지요? 이렇게 예수란 명사에 얽매어 사는 그 사실이 불쌍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서 소망은 무엇이냐면 그를 따르는 이념을 갖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예수님께서 실체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예수가 바라던 행복을 찾아내야 되고, 말씀을 붙들고 예수님이 잃은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그 잃은 것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원수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는 처참한 환경에 처했던 예수였기 때문에, 그 심중의 모든 사연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 우리들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말씀만 붙들고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는 기독교는 망합니다.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그 자취, 애달프게 말씀하던 그 심정 자체를 붙들고 나와의 인연을 종결지어 세상 것을 청산해야만 예수님의 한이 해원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