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집: 신앙자의 태도 1959년 03월 2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89 Search Speeches

참음의 종착지

그러면 그 참음의 종착지는 어디인고? 인내의 종착점은 어디인고? 여러분은 그 종착점을 더듬어서 헤매어 봤습니까? 그곳이 아담 가정이었습니까? 거기도 아니었습니다. 노아가정이었습니까? 거기도 아니었습니다. 역대 선지자들이었습니까? 거기도 아니었습니다. 오늘 내 한 자체에도 역시 참음의 역사가 남아 있고, 이 한 사회에도 참음의 역사가 남아 있고, 내 이후 후손에게도 참음의 역사가 남아지려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나는 참음의 왕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어 아버지 앞에 나타나야 겠습니다. 6천년을 참아 나오신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늘 앞에 나가겠다는 생각이라도 하는 자들이 땅 위에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참음이 있다 하지만 그 참음이 역사적인 참음의 종착점과는 먼 거리에 있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와 인연된 사람들이 '지쳐서 못 가겠다'고 합니다. '통일교회는 좋지만 어려워서 못 가겠다' 하는 말을 듣게 되는 데,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자일 거예요. 땅을 두고 보면 행복한 자일지 모르나 하늘을 두고 보면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가기가 어렵습니다. 가는 길은 눈물의 길입니다. 보고 울고, 느끼고 울고, 싸우면서 우는 눈물의 길입니다. 눈물이 그칠 시간이 이때인 줄 알았더니 아닙니다. 눈물이 더 연속되어야 하는 , 즉, 더 참음의 눈물을 고대하시는 하늘의 심정이 있는 것을 알고 하늘이 처량한 모습들인 우리를 기다리는 것을 알게 될 때, 내가 참았다는 그 사실도 하늘 앞에 면목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해방 이후 오늘까지 나왔으나 아직까지 내 참음의 한계를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또 끝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끝나기를 바라는 그 시간서부터 자기를 살필 것이며, 그 시간서부터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신앙생활에서 느껴봐야 되는 것입니다.

참으신 아버지, 그 아버지가 내 아버지요, 참으신 그 분이 나와 영원히 같이 살 나의 아버지며, 참으신 그 분이 내가 모실 신랑이라고 여러분은 마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늘 앞에서 기뻐하고 영광을 누린 자가 있다 합시다. 그를 바라보고 부러워하는 것보다는 참음의 자리에서 늠름하고, 참음의 자리에서 태연자약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 앞에 참음의 모습으로 나타난 그 자가 오늘의 이 혼란된 역사에서, 참음의 역사과정에서 행복스러워하는 자보다도 귀한 자인 것을 느낄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한 심정으로 오늘의 이 혼란된 시대를 넘어갈 줄 모르는 자는 하늘에 대해 배반자가 되고 맙니다.

여러분에게 물질로 인한 고통이 있습니까? 이것을 참아야 되겠습니다. 지식으로 인한 고통이 있습니까? 이것도 참아야 되겠습니다. 내 일신에 대한 심적인 고통이 있습니까? 이것도 참아야 되겠습니다. 참음의 6천년 역사를 배반하는 그런 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참고 참고 또 참아야겠습니다. 망하는 줄 알았더니 남아진 것이 하늘의 역사요, 쓰러지는 줄 알았더니 소생해 나온 것이 하늘의 역사입니다.

여러분들은 사육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민족의 혼이 꺾어지려 할 때, 민족정신이 흐려지려 할 때 다시 민족을 새로운 소망으로 이끌어 줄 수 있었던 터전은 무엇이었던가. 그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음의 길도, 죽음의 길도, 어떠한 고통의 자리도, 가혹한 창칼도 참았던 그 터전이 있었기에 우리의 민족정신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하늘의 전통적인, 천적인 정신을 이어받을 자 그 누구뇨. 참음의 제단을 높이 받드는 자입니다. 참음의 제단을 받들고 하늘을 향하여 고대하고 있는 무리가 그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마음이 가공적이고 공상적이 아니라 실제적인 감정, 실제적인 촉감에서 느껴져야 하겠습니다. 그 느껴지는 것은 내가 참을 약속하고 맹세하였던 것과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고 비웃을 수 있고 그런 여유가 여러분의 뱃심으로부터 그 세포까지 움직여져야 합니다. 그런 충격이 없다 할진대 남아진 고난의 도수를 어떻게 채울 것인고. 민족이 넘어야 할 고난의 고개를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 세계가 넘어야 할 고난의 고개를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 하늘이 넘어가야 할 이 고개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고난의 성을 쌓고 죽음의 성을 쌓으면서 참는 과정을 거친 후 복지가 나타나지 않는 다 할진대는 하나님의 참으심도 어느 한 날에 끝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