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4집: 성약시대의 발족과 신세계 창조 1993년 01월 29일, 미국 세계선교본부 Page #11 Search Speeches

죽음의 자리

선과 악이 이러한 표준 밑에서 싸우고 있다는 걸 생각할 때에, 선과 악의 길을 가려야 할 사람이 종교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한 종교권이나 그 종교권을 따라 신앙길을 가는 사람들은 전부 다 생명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님과 같은 사상을 갖지 않고는 그 종교가 바라는 최고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가는 정통적이고 공식적인 내용을 가르치는 교리라고 한다면 그것은 생명을 기반으로 해 가지고 넘느냐, 못 넘느냐 하는 것을 가르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성경이 위대한 것은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잘살기를 바라는 일반적인 사회 환경과는 반대로 역설적인 논법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다 축복받았지요?「예.」그래, 부처(夫妻)끼리 서로 사랑을 속살일 때, '얼마만큼 사랑하느냐?'고 하면 하늘땅만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걸 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내가 당신을 위해서 죽고 나서도 사랑한다.'고 할 때, 그것이 제일입니다. 그럴 때에 '내 남편은 영원히 참된 남편이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는 결론이 나온다구요.

그것이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과 나는 영원히 같이 있지만 이보다 더 좋은 존재가 있으면 나와 더불어 자연히 같이 있고 싶다.' 할 수 있는 그런 환경권 내에 들어가는 자리가 해방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해방의 세계가 정해진다고 보는 거예요. 거기가 바로 사랑의 천국이요, 방대하고 무한한 사랑의 세계가 전개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한 것은 죽음의 자리를 넘어서도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말이라구요. 그렇게 생명을 걸고서라도 생명이 살아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같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하기를, '네 어머니나 혹은 처자나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으면….' 했어요 여기에 십자가라는 말이 나와요.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양면을 얘기했다구요.

그것은 생명을 걸지 않고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생명을 걸고 넘어가고, 자기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희생되더라도 가야 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넘어서서 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중적인 내용을 말했다구요. 죽음의 세계를 넘어서 십자가를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의 사상입니다.

투입하고, 희생하고, 위하겠다는 사상이 어디에서나 통할 수 있는 세계가 영원한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세계를 빚어 놓고, 이 땅 위의 타락한 인간을 조종하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이 영원한 세계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의 교차선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동안에 이러한 뜻길 내에서 감옥에도 많이 갔다 왔다구요. 선생님의 이 두 손에 쇠고랑을 많이 차 봤어요. 쇠고랑을 들 때마다 '이것은 죽음의 길과 직통하는 직단거리의 증거물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손에 쇠고랑을 찬 레버런 문, 자신은 안다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안다고 할 때에 죽을 자리에 가면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 어느 때는 쇠고랑이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죽음길을 가야 한다면, 그 길 가르고 갈 수 있고, 책임을 지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늘의 사람이고, 피해 가겠다는 사람은 하늘의 사람이 아닌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생활하면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어요. 직행하는 것입니다. 직행이에요. 고향 산천을 떠나 환경이 다른 여러 지역에서 이색적인 풍경을 느끼며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거기에서 인연된 모든 사람들이 환영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전부가 부정하는 길을 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구요. 나중에는 혼자만 남는 것입니다.

친구도 스승도 떠나고, 친척도 떠나고, 나중에는 부모 형제도 다 떠나고 혼자만 남는 것입니다. 버림받은 입장에서 나를 처단하기 위해 집어넣은 감옥생활을 할 때에, 거기서 어떤 생각,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지고 사느냐 이거예요.

거기에서 내가 해방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내가 나가게 되면 어떻게 더 멋지게 큰 환경에 부딪쳐 가지고 나갈 것이냐 하는 걸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또 그 환경이 환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환경에 관계되었던 별의별 사람들이 나와서 배척하고, 반대하는 거예요. 친척들, 통일교회를 따르던 사람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따르고, 선생님을 모시고, 선생님을 위해서 맹세한 모든 사람들이 배반하고 져버렸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