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집: 미처 몰랐습니다 1972년 08월 2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0 Search Speeches

최고의 유언

오늘날 통일교회가 세상에서 지금까지 규탄받고 나왔지만, 이 통일교회가 어떤 교회냐? 그건 여러분들이 모를 거라구요. 어떤 자리, 어떤 위치에 있었느냐, 어디서부터 출발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통일교회는 종교 가운데에 제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다구요.

제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두고, 그 누구도 모르는 세계까지 발굴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영계가 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지 알아요? 사랑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미국에 있으면 미국에 갔다 올 수 있는 거예요. 순식간에 갔다 오는 거예요. 영계에 가 있어도 순식간에 갔다 올 수 있는 거라구요. 시간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사랑의 역사만 들고 나가면 모든 것을 포괄하고도 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역사는 거기서부터 출발했고, 과정에서는 그곳을 그리며 가고 종착점인 그곳을 표현화시켜 가지고 생활무대에서 이어받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냐? 따라서 그것은 과거에도 있어야 되고, 현재에도 있어야 되고, 미래에도? 없어야 돼요? 있어야 돼요, 없어야 돼요?「있어야 됩니다」 '아, 나는 지금 돈이 많고, 내가 대통령이 됐으니 이것이면 그만이야. 과거에는 내가 사랑을 필요로 했지만 오늘은 사랑이 필요없어. 이제는 여편네, 자식을 다 나눠 주자' 그래요? 돈을 가져 보고, 권력을 가져 보고, 다 해보고는 사랑이 귀한 것을 더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면서도 살면서도 죽으면서도 그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죽을 때에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딸이 있으면 '야, 죽기 전에 와라' 하고 부르는 거예요. 자식은 부모가 운명할 때 거기에 참석해야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을 보고 죽어야 눈을 감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다고 보고 죽는다고 해서 그 아들딸들이 와서 한바탕 맛있는 갈비짝을 갖다가 대접해요?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천만번 절을 한다고 좋아해요? 아니라구요. 대할 때 눈물을 홀리면서 '엄마, 아빠…'·'잘 있거라…' 하지요. 그런데 유언하기를 '너희는 돈을 잘 벌어서 원수를 갚아라' 한다면 그는 허튼 녀석이라구요. 또 너는 세상의 권력을 잡아라'고 한다면 허튼 녀석이라구요.

진정한 부모라면 '너희는 나보다도 네 아들딸을 사랑해라. 나는 너희들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미급했다. 내가 너희에게 보여 준 사랑을 급수로 말한다면 초단급밖에 못 된다. 그러니 너희는 할 수 있으면 십 배 만 배 더 사랑하라'고 한다면 그 이상의 유언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너희 아버지를(혹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사랑이 부족했다. 내가 이제 임종의 순간에 있어서 한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 아버지(흑은 어머니)를 힘껏 사랑하지 못한 것이 한이니 부디 너희는 이 엄마, 아빠 대신 너희들끼리 힘껏 십 배 만 배 사랑해 다오' 하고 유언을 하는 부모가 있다면 위대한 조상이 되지 않겠느냐? 나는 그것을 찬양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안 그래요? '야 야, 집문서 어디 있어? 집문서' 이래 가지고 '이것 꽉 쥐어라. 네 여편네를 잃어버리고 자식을 잃어버려도 이것만은 잃어버리면 안 된다' 이런다면 이게, 이게…. 그런 조상은 쓰레기통이라구요. 나는 그렇게 보고 있다구요. 그런 조상은 쓰레기통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남겨야 할 유언 중에 최고의 유언이 무엇이냐? 사랑의 전통을 빛내고, 사랑의 현실을 강화하고, 사랑의 미래를 소망으로 자식의 가슴에 불을 질러 놓을 수 있는 자리에서 가는 부모라면, 그 부모는 하나님이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손이 그 유언을 따라 산다면, 나라가 추앙할 수 있는 중심존재가 될 것이고, 만국이 찬양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틀렸어요? 자,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들 자신을 생각해 보게 될 때,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알았어요?

아까 말했듯이 20대의 젊은 청년 앞에 역사적 섭리를 통한 부모가 있었는데, 그 부모가 일생 동안 있는 정성을 다하고 희생하여, 자기 때문에 죽어간 사실을 몰랐다가 그런 사연을 비로소 알게 될 때에는 뻔뻔스럽던 그 얼굴은 땅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릴 줄 모르던 목석 같은 사나이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질 것이 아니냐? 그 심정을 찾고 돌아서서 산에 있는 무덤을 찾아가는 그 길은 천년사의 인연을 회생시킬 수 있는 부활의 길, 심정부활의 길이 아니겠느냐? 거기에서 무덤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는 그 자리는 천지에 효의 도리와 충신의 도리를 싹틔울 수 있는 거룩한 자리가 아니겠느냐? 안 그래요?

이러한 불쌍한 우리 인류, 이러한 처지에 있던 우리 자신들이 그러한 부모가 있었던 것을 몰랐다가 그것을 알고 난 아침은 새로운 아침이요, 그 아침은 영원히 복된 아침이 아니겠느냐? 눈물을 흘리면 얼마나 흘릴 것이고, 통곡을 하면 얼마나 통곡을 하고, 소리를 지르면 얼마나 소리를 지를 것이냐? '내 울부짖음에 천지여, 화동할지어다. 하늘이여, 여기에 동정할지어다. 역사의 조상이여, 기뻐할지어다' 이러한 최후의 통첩을 하면서 통곡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