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집: 새로운 생명과 수난 1970년 10월 14일, 한국 통일동산 (구리시 교문동) Page #196 Search Speeches

고난 가운데서 발전해 온 통일교회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통일교회 자체도 그 수난의 결과로서 망하느냐 아니면 다시금 재생의 길을 더듬어 가느냐 하는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약 수난의 결과 선의 입장에 선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권에 흡수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악의 입장에 선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망할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됩니다.

지금 통일교회는 한국 민족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고 수난의 핵심의 위치를 지키면서 역사과정을 통과하고 있지만, 그 고난의 역사과정을 통과하면서 그 모습이 지워지는 입장이 아니라, 그 고난의 모습을 타고 넘었고, 고난의 환경을 밀어내고 가정 씨족 민족 국가까지 타고 넘었고, 나아가서는 세계까지 타고 넘어서 10개 국의 젊은이들이 모여 왔다는 것은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어섰다 하는 산 증거입니다.

이것을 볼 때 지금까지 환경에 얽매여 온 그 고생이 우리들의 멸망을 재촉한 것이 아니고, 그것이 새로운 방향으로 우리의 뒤를 미는 힘의 원천이 되고 타오르는 원동력이 되어졌다고 한다면, 그 고생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해 온 고생이 하늘이 인정하는 선의 위치에 섬으로써 지금의 이러한 상황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내에서 통일교회가 고생한 그 고생은 통일교회의 체제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이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의 섭리를 중핵의 인연이 내려지고 있다면 그 고생은 세계를 재창조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 식구라든가 미국 식구라든가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식구들의 심경을 본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한국에 있어서 박해를 받은 것은 비단 한국내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국경을 넘어 일본에서 당하는 박해를 대신한 것도 되고, 미국에서 당하는 박해를 대신한 것도 됩니다. 우리 선교부가 있는 세계 각국에서, 그 선교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통일교회의 식구들이 그 나라에서 당하는 박해와 같은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 보면, 하나의 특정한 위치에서 특수한 고생의 길을 간 그 기준은 그것이 멸망을 초래하지 않고 하늘의 위치에 섰을 경우에는 그 선한 기반은 세계적인 것이 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제물로서 고생 끝에 서서 고생의 운명길을 갔다고 한다면, 그 한 사람이 세계가 바라는 선한 기반 위에서 희생되고 죽어갔다면 그것은 한 사람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고, 그 운명을 통해서 어떠한 장소에 있어서도 부활의 봉화를 울리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고난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고난의 배후에 하늘의 섭리와 연관을 가지고 있고, 선한 횡적 환경을 포옹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에 서서 보면 멋진 것이라는 거예요.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가 자라 나온 역사과정의 사실을 우리들이 생각할 때에 부정할 수 없는 결과인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고난 가운데서 발전해 왔습니다. 박해 속에서 우리들은 진전해 왔습니다. 개척해 왔습니다. 싸움을 거듭하는 가운데서도 박해의 고개를 넘어서 이만한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것은 인간 개인의 욕망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역사상에 나타난 영웅이나 위인은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욕망을 가지고 세계를 재패했다면, 개인적인 소원을 가지고 출발하여 고생의 과정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입장에 서서 고생하지 않은 그러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는 역사적으로 비판을 받습니다. 그 길은 사면 팔방으로 막히게 됩니다. 그것은 도리어 악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경계하는 교육의 교재가 됩니다. 그러한 일이 있으면 있을수록 악을 방비하는 하나의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에 입각한 고생은 그것이 만민의 양심이 인정하는 입장에 섰을 경우에는 그것을 하늘의 목표의 계율(戒律)을 표준으로 해서, 혹은 사회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해서 역사적인 중심으로, 또는 세계적 사상의 중심으로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양심의 작용으로 재어 볼 때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통해서 발전의 도리를 더해 온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만한 발전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금후의 문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