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집: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1987년 05월 01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40 Search Speeches

종족적 기반을 확정해야 했던 1960년까지의 7년간

그러니까 어느 누가 욕하지 않는 사람 없고, 어느 누가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만큼, 사탄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기에 2차대전 직후에 기독교가 신령한 집단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되어야 했고, 그 신령한 집단들 중에 성약적 에덴복귀파와 신약적 에덴복귀파가 하나돼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벨권이 되어 가지고 구약적 에덴복귀파와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서, 그다음에는 외적 신사참배를 한 지금까지의 기성교회를 수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군이 이 한국에 진주(進駐)하면서, 8군 사령관-그때는 미군정관이 아놀드입니다-아놀드 군정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미군이 진주하면서 대한민국 행정처를 장악해 가지고 전부 다 수습해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외적으로 신사참배 했던 기성교회 대표들은 전부 다 어떠한 패들이냐 하면, 외국에 가서 유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일본에 가서 유학한 사람, 그렇지 않으면 미국에 가서 유학한 사람들 등 똑똑한 층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생명을 각오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려고 하지 않는다구요. 결국 전부 다 일제의 앞잡이들, 이런 패들이예요.

결국은 미 군정부가 생김으로 말미암아 누가 통역관이 되었느냐 하면, 목사하던 사람이나 목사와 관계되어 가지고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전부다 통역관으로 들어가 있는 거예요. 통역관으로 들어가 가지고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어서의 아벨권 종단 형성을 해오는 역사적 기반을 무시해 놓고, 이들이 나라를 중심삼고 하나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통일교회를 따돌린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한국의 국가정세는 복잡한 정세로 흐르게 된 거예요. 어느 누가 수습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이 혼란상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 발전하고 있는 것은 미래의 한 때를 위해 우리가 탕감조건을 세운 기반이 있기 때문에 발전하는 것이지, 이것이 전부 다 속은 썩어서 나온다는 거예요. 완전히 쓸 것이 없을 만큼 썩어 나온다는 거예요. 껍데기만 번지르르하지 내용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내가 1950년대를 중심삼고 여러분이 잘 아는 고독한 자리에서, 어느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자리에서…. 그래서 선생님이 이 통일교회를 시작한 것은 말이예요, 평양에 가서 기성교회 믿는 졸짜나, 신령한 집단에서 제일 잘 믿는 사람을 빼내는 운동을 한 것입니다. 빼내는 운동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빼내기 운동을 하려면 그들이 있는 신령한 단체의 지도자 이상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열의에 있어서나,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 앞서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중에 통일교회의 과거 역사에 선생님이 탕감복귀의 노정을 걸어나오는 데 있어서, 그러한 과거가 있다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 사람 안 된다구요. 비참했습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피땀을 흘려야 돼요.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하며 결사적으로 피땀 흘린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신령한 집단 가운데 똑똑한 사람들, 그다음에는 기성교단에서 그래도 잘 믿겠다고 어느 교파에도 속하지 않고 신앙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빼내는 운동을 한 것입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때는 자유분방한 시대였습니다. 마음대로 왔다갔다할 수 있는, 교파들이 전부다 혼란되니까, 잘 믿는 곳이 있다면 이동하려고 하는 그런 시대적 환경이었기 때문에, 그런 환경에서 이것을 새로이 규합하기 위해서는 있는 정성을 다해서 피땀을 흘려야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새로운 신령역사가 그야말로 순수한, 자기 체험한 이상의 것을 전달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통일교회가 개인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가지고 가정적 환경으로서, 그다음에는 종족적 환경으로서, 그다음에는 이 국가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으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1954년을 중심삼고 1960년까지 7년간인데, 이 기간에 종족적 기반을 확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거예요. 예수님이 종족적 기반을 못 이룬 것을 반드시 탕감해 가지고 이 기반을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어떠했느냐 하면,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1954년부터 강력한 반대역사에 들어갔어요. 들어가면서, 전부 다 국가가 똘똘 뭉쳐 반대하는 데 있어서 이후7년간 이 국가에 영향을 미쳐야 되었다구요. 아무리 정부가 반대하더라도 통일교회를 없앨 수 있는 기반이 되지 못했다 이겁니다. 아무리 반대하고 아무리 마음대로 없애려고 해도 없앨 수 없는 환경으로 넘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기간 후에 1960년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성혼식을 단행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7년간 기독교문화권을,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4천 년간 유대교문화권에 있어서 종족적 판도를 이루려고 했던 것과 같습니다. 종족이 없으면 민족으로 갈 길이 없는 거예요. 종족적 판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유대 나라와 유대교를 중심삼고 하나 만들어 가지고 로마, 세계시대로 가야 할 그 길을 가져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1954년부터 시작해서 1960년도까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국가적 박해를 넘고 뚫고 올라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 기간에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습니까? 1957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교회 그때 식구들은 전체 전환했어요. 1주일씩 금식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7월 20일을 중심으로 총동원해서 40일전도 민족 공격시대로 들어갔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