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집: 최후의 승리점 1972년 05월 2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70 Search Speeches

최후의 승리점은 우리가 닦아야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부름받은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찾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실 수 있는 하나의 나라를 위하여, 보다 가치 있는 하나의 나라를 위하여…. 역사 이래 어떠한 나라보다도 우위에 서서 역사적 전통을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국가와 국민이 되어 한 분의 주권자를 모시는 것이 기독교의 사명이요, 수많은 종교의 사명입니다.

그 주권자로 오시는 분이 누구냐? 그분이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개인을 지도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메시아는 국가와 민족을 치리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개인의 터전이 없기 때문에 개인의 길을 닦아야 되고, 가정의 터전이 없기 때문에 가정의 길을 닦아야 되고, 종족, 민족, 국가의 터전이 없기 때문에 그 길을 닦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그 터전을 닦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스릴 수 있는 나라의 기반이 깨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 나라의 기반을 갖지 못한 예수님은 비참하게도 가정적인 기반도 갖지 못했을 뿐더러, 개인적인 기반도 갖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형성하는 데는 가정이 출발의 기원이기 때문에, 가정을 찾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예수님은 '나는 죽지만 다시 찾아와서 가정을 찾아야 되겠다'는 최후의 유언을 남기셨던 것이 기독교의 신랑 신부의 이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출발도 못 했다는 것입니다.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사내로서 사내 노릇도 못 하고 가신 예수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가정을 가져 가지고 예수님의 직계 혈족이 있었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누구의 통치권에 있을 것이냐? 예수님의 선한 직계 후손에 의해 치리를 받기 때문에, 바오로 6세와 같은 천주교 교황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장로교, 감리교, 혹은 구교 신교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의 체계화된 세계적인 주권국가 형태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세계적 판도가 되었을 것이고, 그러한 기반만 되었다면 공산당은 나올래야 나올 수 없습니다.

이렇게 비참하게 된 원인이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동기가 되었고,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역사적 비운을 맞게 되었다는 것을 기독교 신자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운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국가와 세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 출발의 기원을 개인으로 다짐하고, 가정으로 다짐하고, 종족, 민족, 국가로 다짐하는 나라는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민족이 망하게 되면 하나님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무리를 옹호하고 발전시켜 놓아야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한 무리들을 제거시키는 날에는 하나님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한 그러한 무리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승리의 최종점, 최후의 승리점은 여러분이 닦아야 합니다. 그 발판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 개인은 가정 전원에게 넘겨주고, 가정은 종족 전원에게 넘겨주고, 종족은 민족 전원에게 넘겨주어야 합니다. 민족이 그것을 넘겨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새로운 이스라엘의 출애급노정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해서 그 민족이 거국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계승 민족이 될 때는 세계를 대표하고, 세계를 주관하는 것입니다.

한국을 통하여 그러한 나라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한국으로부터 세계로 이어받아 가지고 영계와 육계까지 완전히 이것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 결속되어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결정되었다는 평화의 기점이 이 천주간에 형성되는 날이 와야만, 비로소 천상천하에 최후의 승리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비로소 웃으실 수 있고 , '아! 다 이루었다'고 하실 수 있으며, '내 앞에는 행복만이 있을 뿐이다. 내 앞에는 더이상 억울하고 분한 소모와 희생의 역사적인 탕감노정과 구원섭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낙인이 찍혀야 합니다. 이 지구성과 영계에 있는 영인들을 해방시켜 가지고, 그들이 완전히 해방된 자리에서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을 가져야만 최후의 승리점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야만 영원히 천상천하에 평화의 왕국시대. 그야말로 행복이 시작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가야 됩니다. 난 것도 그것을 위해….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봐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회도 있고 다 가진 것 같지만, 갖고 있는 것은 전부 다 남을 위해서 또 세계를 위해서 갖고 있습니다. 돈이 있다고 해서 내가 양복을 해 입고 집을 사겠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 이런 집에 살고 있지만 돈이 있다면 나라를 위해 쓰려고 합니다.

내가 이번에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수십만 달러를 쓰고 왔습니다. 한국을 위해 그 돈을 썼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렇잖아요? 못사는 한국의 통일교회. 지금도 지방에 가 보면 도깨비집 같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끄러워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농부가 초야에서 자고 일어나 그 손으로 생명을 지닌 씨를 뿌리는 것은 허망하고 처량한 놀음이라구요. 한 되밖에 안 되는 밑천까지 다 뿌린다고 그가 어리석은 사람이예요? 그 결과를 모르고 뿌린다면 그는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딱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통일교회인데도 불구하고 세계를 위해 돈을 뿌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런 것을 두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십만 달러를 어떻게 쓴다느니, 돈을 얼마나 많이 쓰고 다닌다느니, 별의별 소문이 났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는 거예요. 망하려고? 한 되밖에 안 되는 씨를 뿌리는 농부와 마찬가지로, 그것밖에 없는데도 세계를 위해서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뿌리고 나서 쫓겨나느냐? 아닙니다. 내가 쫓겨날 길이 생길 때 세계의 사람들이 내 대신 쫓겨나겠다고 하게 되는 날 세계는 통일교회를 위해서 있게 될 것입니다. 왜 그러냐? 통일교회가 세계를 위해서 있었으니까 세계도 통일교회를 위해서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자연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이것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입은 옷이 초라하다고 해서 그걸 보고 슬퍼하는 사람은 망해야 됩니다. 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하고 있는 실상이 처량하다고 해서 눈물지으면 망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관념을 초월했습니다. 누운 자리가 초라하다고 해서 이것을 원망하고 지난날을 생각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누가 통일교회 자체를 보고 통일교회 본부가 왜 이렇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뭐 어떻고 어떻고, 세계적인 그 무엇이 되었으니 본부를 새로 지어야 될 것이 아니냐고 권고하기 전에 내가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세계에 갈 때까지 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는데도 통일교회가 망한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가짜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 문선생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어디에 가든지 거처할 집이 있습니다. 어디 가든지 남부럽지 않는 터전이 다 되어 있습니다. 내가 원치 않아도 그 나라에서 제일 고급차를 주려고 합니다. 그것은 왜 그러는 거예요? 주고받는 주체와 대상은…. 대상은 주체의 원동력에 해당하는 상대적인 가치자로 등장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상대자가 주체의 기준 앞에 미치지 못하게 될 때는, 마음에 미안함을 느껴서라도 비례적인 기준 앞에 서려는 것이 천리 원칙입니다. 인간이 타락했을망정 이 본성이 있기 때문에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외국 식구들이 선생님을 위해서 잘한다고 하면서 하고 나서도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서…. 선생님이 무서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본심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여러분 본심이 그러한 것을 볼 때에 그런 길은 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이상은 지옥까지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이제 알겠어요? 지옥까지 해방하자는 거예요. 지상의 공산당 해방은 물론이고 영계의 지옥까지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방하느냐? 그것을 해방하는 것은 선생님이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만 들으면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